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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경주 멈추려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 헤아려야

기사승인 2017.08.10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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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이어 목숨을 끊은 두 명의 마필관리사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장에서 아들을 잃은 두 어머니는 오열했다. 동료 노동자들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노동자의 피로 얼룩진 죽음의 경주를 멈춰라”는 펼침막을 들었다. 기수와 마필관리사 등 경마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의 자살도 2011년부터 보도되고 있다.

경마장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율은 시기와 대상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2~14%로 알려져 있다. 평균 산재율의 20배를 넘는다. 마필관리사들에게 말에 차이고, 떨어지는 사고성 재해는 일상다반사다. 근골격계질환과 폐암(경마장과 연습마장의 모래에 함유된 1군 발암물질인 유리규산 흡입으로 발생)에 이르기까지 숱한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사회·마주·조교사 등을 축으로 한 경마산업 다단계 고용구조의 가장 하부에 위치한 간접고용·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위험하기에 외주화하는 것이며 외주화돼 더욱 위험해진다. 초단시간의 격렬한 경쟁적 승부와 거기에 걸린 일확천금의 욕망이 오가는 적나라한 카지노 자본주의 현장에서 승부와 관련한 사안에서 빚어지는 온갖 모멸적 언어들도 위험한 수준이다. 그러나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를 감내하도록 강요하고, 이런 현실은 죽음이라는 극단을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죽음의 경주를 멈추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마필관리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경주마가 마장 경주로를 질주하듯 빠를리 만무하다. 시간이 걸리고 지난한 일일 것이다. 제도적 개선이 있기 전까지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동고동락하던 동료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최근 두 번째 죽음이 있고서야 부산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마필관리사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관리하기로 했다고 보도됐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동료의 자살(산재 승인 여부를 떠나)을 비롯한 중대재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동자들에 대한 심리적 위기관리와 중재 및 추적관리를 통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정신적인 문제나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조치를 수행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2013년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포함돼 있다. 그 이전부터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의무에 노동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이 포함돼 있었다. 또한 이미 2011년에 '사업장의 중대재해 발생시 급성 스트레스에 대한 조기대응 지침(KOSHA GUIDE H-36-2011)'이 안전보건공단을 통해 마련됐다. 그런데 이 지침은 법적인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가이드일 뿐이다.

올해 노동절에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관련 설문조사에서 848명 중 19%인 161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51명은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전문적인 상담이나 추적관리가 필요한 위험군에 대해서조차 심리적 위기관리와 중재를 담당해 낼 공공자원이 턱없이 부족해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1년에 1천800여명이 사망하고 9만건의 산재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중대재해 사업장 노동자들의 심리문제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은 가이드에만 등장하는 일이다. 이번 사건처럼 다수의 직·간접 경험자들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욱 문제다. 일선 행정 담당자나 사업주가 관리의지가 있다고 해도 지침대로 수행하거나 자문할 전문인력 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지역정신보건센터·근로자건강센터의 공적자원 개입을 제도화하고 관련 인력을 충원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공공자원이 부족하다면 민간 자원을 연계해 신속히 중재·개입할 수 있는 제도와 재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첫 번째 마필관리사 자살이 발생한 이후 동료 노동자들의 심리적 위기를 조기에 관리했더라면 두 번째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작열하는 태양과 뜨거운 선박블록 위에서 크레인을 바라볼 때마다 아찔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간신히 버티며 생계를 위한 노동을 이어 가는 이들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죽음의 경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헤아려야 한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류현철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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