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차액 반환소송의 쟁점은 신의칙이다. 기아차뿐만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0일 통상임금 소송 중인 35개 기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소송에서 최대 쟁점은 신의칙이 65.7%로 가장 많았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단체협약 등을 통해 노사가 명시적으로 합의하거나 묵시적 합의가 있다면, 또는 지금까지 관행이 그렇다면 과거에 받지 못한 임금이라도 노동자들이 받을 수 없다는 것이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이다.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져 사용자가 임금을 추가로 지급했을 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롭다고 판단돼도 마찬가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나온 신의칙 관련 하급심 판례가 엇갈리는 이유다. 사용자들의 신의칙 항변이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기각되기도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벽 뛰어넘기도

공공기관은 사용자 항변 대부분 기각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지 않기로 노사가 명시·묵시적으로 합의하거나, 심지어 임금·단체협상에서 관행이 된 부분까지 신의칙을 적용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하급심은 이를 그대로 적용했다. 인천지법은 2014년 2월 한 제조업체 사건에서 “노사 간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관해 명시적인 논의를 한 적이 없고, 어떠한 이의제기가 없었다”며 사용자의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였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가 회사 경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기한 신의칙 요건 중 첫 번째 요건만으로 판단한 것이다.

반면 노사합의가 있어도 이를 무효화한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를 뒤집은 셈이다.

대전고법은 지난해 1월 다스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속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더라도 그 합의는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노사합의에도 근기법상 통상임금인 정기상여금을 제외하는 것은 무효라는 취지다.

최근 판례를 보면 노사합의가 있더라도 추가임금 지급이 경영에 중대한 어려움을 불렀는지 여부를 함께 판단하는 판결이 주를 이룬다. 신의칙 관련 쟁점이 노사합의 여부보다 경영에 미치는 영향으로 옮겨 간 것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사용자의 신의칙 항변이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민간기업과 비교해 예산운용 재량권이 큰 탓이다. 부산고법은 2014년 부산광역시 소속 환경미화원 사건에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통상임금 항목을 추가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하고 있고, 원고들에게 지급할 돈이 많지 않아 추가임금을 지급해도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도 2014년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직업상담원이 소송한 사건에서 “정부는 사적 기업과 달리 막대한 예산을 바탕으로 탄력적인 지출이 보다 용이하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민간기업은 재무지표 위주 판단, 1·2심 다르기도



민간기업은 사건마다 법원 판결이 엇갈렸다. 현대중공업은 1심에서 노동자들이, 2심에서 사측이 승소했다. 1심은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2012년 12월 당시 회사 경영상황이 나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2심은 조선업종 불황에 따른 실적악화를 이유로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다.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전장 소송에서는 1심 재판부가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이 지난 4년간 당기순이익을 합친 금액보다 두세 배 많다”며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이에 반해 2심은 “회사가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보유해 왔고, 일정한 사내유보금을 확보해 왔다”며 “회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신의칙과 관련한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가운데 당기순이익 대비 20~40%를 기준으로 추가임금액이 그 이하면 사용자의 신의칙 항변을 배척하고, 그 이상이면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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