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4월 최준서씨와 회사가 작성한 형사합의서
최준서(39)씨는 지난해 10월 공장 폭발사고로 3도 화상을 입었다. 최씨는 치료비 지원을 약속받고 회사와 형사합의서를 작성했다. 비급여를 포함한 일체의 치료비를 지급하던 회사가 지난달 말 돌연 치료비 중단을 통보했다. 최씨가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한 권한을 변호사에게 위임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가 산업재해 노동자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최씨는 당장 매달 1천여만원에 달하는 비급여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신체 60% 3도 화상 … 수술·치료비 2억여원 필요=지난해 10월24일 울산 울주군 A공장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A공장은 인조대리석 경화제를 생산하는 곳이다. 원료를 건조기에 넣어 말리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건조실에서 작업 중이던 최준서씨는 신체 60% 3도 화상을 입었다.

회사와 대표는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으로 올해 7월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최씨가 합의서를 써 준 덕택이다. 최씨와 회사 대표는 올해 4월 “산업재해 재활치료(통근치료 포함)시까지 의료비 중 비급여는 물론 소요되는 제반 경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형사합의서를 작성했다. 회사는 최씨에게 2천5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최씨는 어떠한 형사상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최씨는 사고 이후 피부이식을 포함해 7차례 수술을 받았다. 회사는 올해 7월까지 주기적으로 치료비를 지급했다. 화상치료가 장기간 소요되는 데다, 형사합의 과정에서 회사와 얼굴을 붉혔던 최씨와 가족들은 민사상 손해배상 합의를 하고 회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했다. 최씨는 손해배상 청구 관련 일체의 권한을 변호사에게 위임했다. 그러자 회사는 지난달 27일 치료비 지급 중단을 통보했다.

최씨는 “위로금 산정 과정에서 어머니가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도 아니고 손해배상액 산출을 위해 변호사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일 뿐인데도 회사가 불쾌해하면서 치료비 지급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최씨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도 판결까지는 통상 1년이 걸린다. 재판 중에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다. 병원에서 산정한 예상 수술비와 치료비만 무려 2억원이다. 최씨는 “한 달에 비급여 치료비가 1천200만원에서 2천만원까지 나온다”며 “3도 화상으로 경제활동을 못하는 상황에서 집을 팔아야 할 지경”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회사 “치료비, 손해배상 청구액에 일괄 지급할 것”=재판 과정에서 A공장은 건조기 시험가동을 하지 않고 스파크 발생 방지 설비도 재배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 안전교육마저 하지 않았다.

최씨는 보호안경과 보호장갑을 사비로 구매했다. 화재사고가 났을 때 보호안경 덕에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른쪽 귀 절반이 녹아내렸고,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최씨는 "대표가 500만원 벌금형을 받은 것은 자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최씨는 화상 부위 비후성 반흔으로 추가 수술이 필요한 상태다. 비후성 반흔은 화상 부위 피부가 튀어 올라와 가려움증이나 통증을 유발하는 증상을 말한다. 최씨는 “병원에서 통원치료 기간만 1년 반을 잡았다”며 “필요에 따라 치료가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다”고 힘들어했다.

회사는 변호사를 통해 손해배상 청구를 하면 협상을 거쳐 치료비를 일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자식 같이 생각해 치료 과정에서 모든 것을 지원하고 매주 병문안도 갔다”며 “그럼에도 최씨측이 갑자기 변호사를 선임하고 ‘변호사와 이야기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도 변호사 선임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빛나라 변호사(법률사무소 인정)는 “사업주가 향후 일체의 치료비를 지급하겠다는 조건으로 형사 합의를 한 뒤 이를 위반해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산재노동자는 사업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자는 치료비를 직접 마련하느라 경제적·심리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되고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회사를 위해 일하다 다친 피해자에게 두 번 상처 주는 일”이라며 “사업주는 산업재해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윤리적인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조속하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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