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결과만 번쩍번쩍한 게 아니라 제작 과정도 드라마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10월26일 발생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이던 고 이한빛 PD가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한 뒤 1년이 지났다. 그간 방송 제작환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드라마의 화려함 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고강도 노동,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 이한빛 PD 1주기를 한 달여 앞둔 20일 오전 신경민·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실태 개선을 위한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는 온라인 제보센터를 통해 방송제작 노동자 106명의 목소리를 정리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드라마 제작노동자 13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한 내용도 담았다.

◇'악 소리' 나는 방송업계 노동자들의 실태=드라마 노동자들은 고강도·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대개 드라마는 4회 방영분까지 찍어 놓은 상황에서 첫 방송을 시작한다. 후반부부터 촬영 분량이 늘어나면서 방영 날짜에 쫓겨 밤샘 촬영도 일상화한다.

대책위에 따르면 노동자 A씨는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1일 평균 20시간 일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쉬는데 피로가 쌓여 정말 잠만 잔다”고 답했다. “메인 PD는 주 7일을 매일 15시간 정도, 막내는 주 7일 하루 18~19시간 정도 일한다”는 증언에 이어 “하루도 쉬지 않고 최대 50일을 일했다”거나 “하루 3시간 자면 많이 자는 것”이라는 응답도 이어졌다.

빠듯한 방영일정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권위적인 조직문화도 굳어졌다. 인권침해·성희롱·폭언도 자주 발생한다. “중견배우나 메인 PD한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현장에서 육두문자는 기본” “선배가 배·머리·뺨을 툭툭 쳤다”는 폭로가 나왔다. 임금은 장시간 노동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3년차 PD(AD) B씨의 경우 월급 3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시급으로 계산해 보니 5천500원에 불과했다.

◇특례제도 폐지·노동자성 인정해야=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이 이 같은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것은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인력의 상당수는 특수고용 직종으로 분류되는 프리랜서다. 직·간접적으로 사용자 지시를 받아 일하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프리랜서 신분이 아니어도 이들의 노동시간은 무제한 허용된다. 근로기준법 59조에 적시된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김동현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51년째 재검토 없이 특례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크게 위협한다는 점에서도 특례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드라마 제작 노동자가 프리랜서를 선택하는 이유는 사업자·팀장이 사용자로서의 부담과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그런 계약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며 “많은 프리랜서의 경우 사용자 종속성이 인정되므로 보호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근기법 위반 행정지도할 것”=정부부처도 방송 제작 현장의 노동조건 개선을 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승순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근로기준법 59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현재 국회에서 개정안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임승순 과장은 “노동시간 특례제도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노사 서면합의를 해야 하고 연장근로시 기본 시간급에 비해 1.5배 가산할증해서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조사를 해 보니 제작사의 60%가 포괄임금제를 사용해 연장근로시 정액금을 지급하고 있었다”며 “요건을 엄격히 지키고 있는지 관리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책위 발표 결과를 보면 드라마 제작인력은 노동자에 가깝다”며 “근로조건 자율개선 지원사업을 시행할 때 드라마 제작 부문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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