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본부장(변호사)

“큰 틀에서는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시대 조류를 따라야 해요. 너무 늦었죠. 현장에서는 20시간 이틀 연속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졸리지 않을 장사가 있나요? 사고 나기 십상이죠. 근무대기시간도 노동시간입니다. 근로기준법에 그런 취지가 담겨 있어요. 그럼에도 GPS가 켜져야 근무시간이 시작됩니다. 차고지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장시간 노동을 몸소 겪고 있는 어느 자동차 단사 위원장의 절절한 토로다. 졸음운전 사고사를 한 달이 멀다 하고, 동료들이 그렇게 사라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심정은 차마 말로 다하지 못한다고.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그래서 이제는 한다고. 이런 예외, 저런 예외를 두고서 뭐가 되겠냐고. 제도라는 게 원래 그런 게 아니냐고. 완벽한 제도가 원래부터 없었는데, 국회가 언제부터 그렇게 꼼꼼했냐고. 다 핑계라는 그 말에, 필자의 머리가 어찔했다.

탁상에서 우리 기준대로만 재단하고 있었다는, 참으로 늦은 반성이 절로 나왔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해서도 말했다. “내년 임금협상은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덕이지요.” 최저임금 영향력이 가져온, 노동조합과 대표자로서의 무력감도 묻어났지만, 이 방향이 바른 방향이라고 강변한다. “현장은 늘 운전하실 수 있는 분들이 부족합니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무경험자도 환영합니다”라는 아찔한 문구를 광고하고 있다면서.

“결국 그 피해가 이용자인 시민에게 돌아갑니다. 자정이 돼서야 공식적인 퇴근을 하죠. 차고지에 차를 넣고 나면 새벽 1시에나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 6시 첫차를 운행하려면 늦어도 4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무거운 눈꺼풀을 이겨 낼 장사가 있습니까? 게다가 미숙련이라면….”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시민들이 감당해야 한단다. 그저 듣고만 있을뿐 무슨 말이 필요하랴.

20일 국회 앞에 집회가 열렸다. 한국노총 주최로 열린 이날 집회에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 철폐하라”고 외쳤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조합원들이 국회대로 건너편에 모였다. 기대 때문이리라. “장시간 노동 철폐!”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청명한 가을 하늘만큼이나 현장발언도 날카로웠다. 지하철 환경직조합원부터 우정조합원까지. 지난주까지 몇 분의 조합원들이 돌아가셨는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조합원들의 희생이 있어야 근로기준법 59조 폐지가 가능한지. 노동자들은 “국회의원들은 똑바로 들어라”고 목소리 높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1일과 22일 근로기준법 59조, 이른바 특례조항 개정을 논의한다. 큰 틀은 현행 26개 특례업종을 10개 정도로 줄이는 내용이다. 대표적으로 운수업·통신업(우편)·영화제작·청소업 등이 대상이다. 여러 사정이 있지만 특례조항 폐지가 아니더라도 축소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성숙한 지 오래라는 게 노동계 판단이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동현장 목소리와 달리 국회 입장은 여전해 보인다. 핑계인지는 모르나 여야 정쟁 격화로 근기법 개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차마 입에 올리기 부끄럽다. 단언컨대 이번에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거나, 이런저런 상황을 탓하며 국회가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 다음엔 국회 차례다. 시민들이 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앞으로 그들은 졸음운전에 힘들어하는 버스를 매일 이용해야 한다. 점심시간조차 가질 수 없는 집배노동자를 가족으로 둬야 한다.

“안 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노동적폐가 달리 있지 않아요. 잘못된 행정해석부터 폐지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합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의 발언이다.

국회에 희망을 걸기 어렵다면,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정부라면,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노동행정을 바로잡는 방법으로도 적지 않은 위헌·위법 노동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회에, 법률에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나 오래됐다. 너무 늦었다. 환노위 논의가 기대 난망이면 정의로운 결단을 해야 한다.

의회와 정부가 무수한 노동현안을 해결하는 첫 단추를 어떻게 끼워 넣는지 관전할 수 있는 기회다. 의회와 정부의 진의가 확인될 것이다. “노동시간 정상화 닻이 올랐다”라는 기쁜 소식을 기대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본부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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