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25년간 음식물쓰레기 수거와 공중화장실 청소, 쓰레기집하장 재활용품 분류작업, 도로·공공장소 청소, 쓰레기 무단투기자 탐문·수색을 담당한 서울의 어느 한 구청 소속 환경미화원 J씨.

그는 25년간 매일 두세 시간의 연장근로와 상시적인 주말·휴일근로를 하던 중 새벽 출근 직후 급성심근경색 발병으로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J씨가 사망 직전 휴가를 다녀와 과로가 충분히 해소될 수 있었고 평소 고혈압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며 불승인처분을 했다.

J씨가 입사 당시 구청과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분명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근무시간이다. 그러나 실제 업무 개시시간은 오전 6시 내지 7시였다. 업무 필요에 따라 연장근로가 수반된 주야 교대근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이 근무일로 기재돼 있었지만 J씨는 주말 중 하루 또는 이틀 모두 출근해 8시간씩 일했다.

J씨는 출퇴근 거리가 길고 출근시간이 이른 탓에 하루 평균 3시간을 출퇴근시간으로 보냈다. 긴 출퇴근시간에 상시적 연장근로가 더해지면서 하루에 15시간에서 16시간이 근무와 근무에 수반되는 시간으로 소요됐다.

휴식 역시 쉽지 않았다. 사망 전 3년간 사용한 연차일수가 총 9일(정년휴가 제외)에 불과할 정도로 연차를 사용한 일이 극히 드물었다. J씨는 25년간 단 하루도 결근한 사실이 없었다. 휴일근로를 하지 않는 주말 하루가 있는 경우 그날이 유일한 휴식일이었다.

공단이 J씨의 만성과로가 모두 해소된 기회로 판단한 정년특별휴가가 있었지만, 이는 매우 이례적인 휴식이었다. 이를 통해 장기간 누적된 만성과로가 모두 풀릴 수는 없었다. 실제 J씨는 휴가 직전까지 연장근무를 했고 휴가에서 복귀한 이후에도 바로 이전과 동일한 장시간 근로를 계속했다.

J씨는 고혈압 진단을 받은 사실이 있지만 이는 업무와 무관하지 않았다. 구청 인사발령에 따라 재활용품 집하장에서 야간근무 및 실외청소작업을 수행하던 중 처음 고혈압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J씨는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고혈압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사망 전 종합건강검진 결과 ‘고혈압 전 단계’로 수치가 낮아졌다. 일상생활과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수준으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기타 다른 심혈관계 위험요인도 모두 정상범위였다.

J씨는 환경미화원 업무 특성상 장시간 실외작업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냉방기구가 갖춰진 휴게시설을 제공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구청은 청소업무 직접고용을 줄이고 외주화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신규채용을 줄였다. 지속적으로 인원감축을 단행했다. J씨처럼 정년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환경미화원들의 업무과중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퇴사압박을 가했다. 사망 몇 개월 전에는 이전에 하던 것과 전혀 다른 민원·단속업무로 업무가 변경됐다. 주민을 직접 상대하는 과정에서 하대와 무시를 당하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서울행정법원은 망인의 만성과로와 과도한 스트레스의 존재를 인정했다. 망인이 고혈압을 꾸준히 관리했고 사망 전 휴가로 인해 만성적인 피로가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에 따라 망인의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가 심근경색을 유발하는 기저질환을 자연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했다. J씨의 사망이 산업재해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단이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현재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국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근거해 근로자의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해 공단을 설립하고 재해조사에 대한 배타적인 권한과 역할을 부여했다. 하지만 공단은 재해조사시 J씨의 업무량·업무내용,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 여부에 대한 구체적 내용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사망 전 다녀온 정년특별휴가일수 포함시 총 근로시간이 적은 점, 고혈압 진단을 받은 사실 등만을 고려해 산재 불승인 처분을 했다. 항소심에서야 구청 사실조회를 통해 업무량만 겨우 확인했을 뿐이다.

이 사건과 같이 공단이 재해조사 및 심사를 부실하게 한 뒤 불승인 처분을 하는 경우 업무상재해 입증책임이 재해자에게 전가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재해자(또는 유족)는 사업장에 출입할 권한도, 객관적 자료를 요구해서 받을 권한도 없다. 애초에 법에 의해 관련 권한이 모두 부여돼 있는 공단의 부실한 조사로 인해 재해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공단은 특히 수십년간 근로계약과 다른 상시적인 연장근로·휴일근로를 감내하면서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J씨에게 “며칠의 정년휴가를 통해 수십년의 피로가 해소되었을 여지” “수당을 받기 위해 (일부러) 연장근로를 했을 가능성” “할 일이 없는데도 일찍 출근한 것일 수도 있음” 같은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수십년간 고되고 무거운 업무를 성실히 행한 고인에 대한 모욕이고, 공단의 존재이유와 역할을 부정하는 태도다.

J씨 사건은 과로·과로사·과로자살이 더 이상 ‘사건’이 아닌 것이 된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과로를 충성 또는 헌신이라며 칭찬하고, 과로를 당연시하거나 적어도 체념한 사회에서, 일을 하며 병들고 죽어 가는 것이 너무나 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로자의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해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 복지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해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산업재해보상보험법 1·10·11조)인 공단은 과로가 당연한 사회에 대한 본연의 역할을 인식하고, 일을 하며 병들고 죽어 가는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그 업무로 보여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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