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가 최근 한국 정부에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노동계 요구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초반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해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도 교섭하기 힘들다. 정규직도 노조를 백안시하는 경영진과 배타적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벽을 넘어야 교섭권과 쟁의권을 갖는다. 해직자가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법적 지위를 박탈당했다. 낮은 노조 조직률 원인이야 여럿이겠으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진단은 이견이 없다.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정부는 의지 없고, 국회는 걸림돌만 되고 있다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김태완 택배연대노조 위원장

정부와 자본은 대리운전기사·택배기사 같은 특수고용직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규정해 왔다. 어렵사리 노조를 만들어도 고용노동부는 노조 설립신고증을 발급하지 않거나, 산별노조에 가입이라도 할라치면 특수고용직을 배제하라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렇다 보니 사용자들은 우리와 교섭을 하지 않는다. 파업하면 개인사업자들이 일을 거부한다며 불법 딱지를 붙인다. 이렇게 특수고용직은 노동 3권에서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이분들이 홍길동인가. 왜 노동자를 노동자로 부르지 못하나”라고 말하며 노동 3권 보장을 공약했다. 그런데 이 정부 노동부는 어떠한가. 노동 3권 보장의 가장 첫걸음인 단결권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택배연대노조가 설립신고서를 내자 지난 11일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신고서를 변경하라는 것도, 반려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기다리라는 거다. 특수고용직의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정부 입법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국회는 어떤가. 특수고용직 같은 비정규직의 노동 3권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노동관련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부가 관망만 하고 있을 경우, 아마도 국회는 여소야대를 핑계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설립신고증 발급 정도의 문제를 두고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노동 3권 보장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환기시키고,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친노동’ 정부로 불릴 수 있나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

김주업 공무원노조 위원장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는 지난 11일 노조할 권리 쟁취를 위해 함께 투쟁할 것을 선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한 보수일간지는 “두 노조가 친노동 문재인 정부에 투쟁을 선포한 것”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보수진영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친노동 반재벌’로 포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집권 15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노조할 권리와 노동법 전면 제·개정을 위한 어떠한 가시적 행보도 보이지 않고 있다. 친재벌 보수세력은 적폐청산·경제민주화라는 대개혁의 물줄기를 돌리기 위해 현 정권을 ‘친노동’으로 덧칠하고 있을 뿐이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상황을 보자. 공무원 노동자는 노동 3권은 물론 참정권과 정치기본권마저 부당하게 제한당해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설립신고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과 교사는 사실상 노동자도 아니고 시민도 아닌 회색인간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럼에도 공무원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진정한 촛불정권이라면 이 과정에서 해직된 공무원과 교원을 즉시 원직복직시켜야 마땅하다. 또한 대통령이 수차례 약속했던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도 즉각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노조할 권리 보장이며, ‘친노동’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문재인 정부는 알아야 한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를 법 밖에 방치해 놓고서는 절대로 노동존중·친노동 정부라 불릴 수 없음을.


노조하면 해고되는 비정규직, 고용안정부터
문현군 한국노총 미조직비정규담당 부위원장

문현군 한국노총 미조직비정규담당 부위원장

비정규 노동자들은 매년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노조할 권리를 주장하고 싶지만 노조에 가입만 해도 당장 해고되고 다음번 계약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경원대의 경우 시설환경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 총장이 용역회사를 바꿨다. 당시 지방노동위원회는 노동자 채용 관련 인사경영권은 사측에 있다는 이유로 기존 노동자들을 채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회사는 비조합원 위주로 재고용했고 결국 노조는 해산됐다. 고용이 불안해진 노동자들은 노조활동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노조할 권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이 우선돼야 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로는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없다.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 있지만 이행을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 그러니 고용승계 등의 내용이 있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보호지침은 공공부문에만 해당할 뿐이다. 민간영역에서는 해고가 너무나 쉽게 자행되고 있다. 보호지침을 입법화해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시켜야 한다. 이후 산별노조 형태로 조직화해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노조 아님 통보' 직권 취소부터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전교조는 한국에서 사실상 유일한, 최대 규모의 교원 노동조합이다. 해고자 조합원 인정을 이유로 전교조에게 채워진 법외노조라는 족쇄는 한국 교사들의 ‘노조할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지난 9일 유엔 사회권위원회조차 한국 정부에 대해 자유롭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8년 만에 재권고 했다. 국제기구들의 잇따른 개입은 ‘노조할 권리 보장’이 보편적인 상식이자 국제 표준이라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시절 ‘전교조 죽이기’에 행정·입법·사법을 망라하는 국가기관이 총동원됐고, 국정원과 보수단체의 은밀한 협조까지 있었다. 그 ‘덕분’에 문제해결 방도 또한 다양하다. 고용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 직권취소 조치, 대법원의 ‘노조 아님 통보’ 위법 판결, 청와대·국정원·노동부·교육부·보수단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단죄, ‘노조 설립 신고제’의 변칙적인 허가제 운영을 제도적으로 제한, ‘노조 해산명령권’과 유사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9조2항 폐기, 교원노조법 개정으로 노조의 자주적 운영과 노동 3권 보장, ILO 핵심협약인 87호와 98호 비준 등이다.

행정·입법·사법을 망라한 위 과제들은 ‘택일’할 선택지가 아니라 일괄 이행돼야 할 적폐청산 과제들이다. 이 중에서 ‘노조 아님 통보’ 직권취소 조치는 회피해서는 안 될 핵심과제다. ‘적폐 청산 정부’에게 행정부의 과오를 스스로 바로잡는 것은 의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하려면 정부가 자행했던 부당노동행위부터 바로잡는 게 순서일 것이다.


필라델피아 정신으로 돌아가자
이호근 전북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근 전북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944년 5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채택된 필라델피아 선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 정부가 노동존중을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단결권 보장이다. 우리의 법·제도는 단결권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데 너무 인색하다. 일부 대립적인 노사관계를 핑계 대면서 보편적으로 인정해야 할 단결권을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으로 유보하고 있다. 노사 당사자들이 교섭과 협의를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교섭을 하고, 집단적으로 노무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위해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단결권을 갖고 교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용역이나 파견노동과 관련해 원·하청을 따지지 않고 공동 사용자 책임을 묻는 것은 국제적인 흐름이다. 형태만 위탁이니 파견이니 하면서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이나 노사관계에 개입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전체 노동자 중 90%를 차지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할 단결권을 인정해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필라델피아 정신으로 돌아갈 때다. 노동존중을 하고자 한다면 단결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사회적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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