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리 공인노무사(학교비정규직노조 경기지부 법규국장)

지난 5월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문재인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7월에 2018년 최저임금이 확정됐다. 7천530원. 전년 대비 1천60원이 올라 16.4% 인상됐다. 2001년 이후 최대 인상 폭이다.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노동계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제법 파격적인 인상 폭인 것은 분명하다.

내년 임금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에 부푼 것도 잠시, 곧바로 사용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해 각종 수당들로 땜질돼 있던 임금을 전부 기본급으로 흡수해 실질적 임금을 동결하는 방식을 쓰기도 하고,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직원에게만 조정수당을 지급하는 방식 등으로 보편적인 임금인상 체계 전반을 흔드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기업의 움직임은 어쩌면 예견돼 있었을 수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꼼수로 1년11개월만 계약해 쉬운 해고가 만연해지고 불법파견 소지를 피하려고 하청업체 직원 라인을 분리하는 등의 법망을 피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 왔다. 여기에 합세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저임금위원장은 최저임금법상 산입제외 수당인 식비와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환노위원장도 이에 동의한다고 나서고 있다.

위력적인 6월29일과 30일 파업을 통해 교육부가 각 시·도 교육청과 함께 공동교섭을 제안했을 때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변화를 기대했다. 공공기관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는 꼼수를 부릴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렵게 성사된 공동교섭에서 교육부와 교육청은 교섭의제로 노동조합 요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임금체계 개편’을 이야기했다.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의 요구로 이뤄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확정된 교섭의제와 전혀 관계없는 안건을 논의하자고 나선 것이다. 명목은 ‘임금체계 개편’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당 임금단가를 높이는 꼼수다.

학교는 과거 주 6일 근무 때 토요일도 일급제로 임금을 지급다가 주 5일제 전면시행 이후에도 토요일을 유급휴일로 해서 연간 일급총액을 12분할하는 방식으로 일급 기준 연봉제 임금체계를 사용했다. 이후 임금체계를 월급제로 변경했지만 통상임금 산정시간을 토요일 전체 유급인 것으로 간주해 243시간으로 해 왔다. 노동조합에서는 월급제로 변경되면서 근로제공 의무가 있는 근무일과 주휴일 외에는 토요일을 유급휴일로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니 통상임금 산정시간을 209시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마다 교육청에서는 사실상 주휴일 외의 토요일을 유급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통상임금 산정 기준시간은 243시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통상임금 산정방식을 기준으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연차수당과 시간외근로수당(연장근로·휴일근로수당)을 지급받아 왔다. 사실상 예산절감을 위한 수단으로 통상임금 산정 기준시간을 기형적으로 늘려 놓은 것이다. 전국적으로 학교비정규직이 14만명이 있다고 하니 인건비 절감분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10% 넘게 인상되자 갑자기 입장을 바꿔 현재 임금체계가 비정상적이니 통상임금 산정 기준시간을 209시간으로 변경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렇게도 쉽게 바뀔 수 있었던 입장이 왜 노동조합의 요구에 대해선 마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주장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헌법 32조는 국가는 적정임금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의무다. 공공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공공기관도 당연히 그 의무를 부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의무도 예산 논리 앞에선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예산이 없으니 최저임금 인상 폭을 줄이고, 예산이 없으니 통상임금 산정시간도 엿장수 맘대로 바뀌면서 적정임금이나 최저임금 같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은 노동자들에게 더 멀게만 느껴진다. 그들에게 과연 공무원 책무성·공익추구 등의 가치로 공무를 수행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추석을 앞둔 지난달 18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지도부는 집단삭발을 했다. 공동교섭에서 제안한 교육부와 교육청의 최저임금 꼼수와 임금교섭 파행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교섭은 계속해서 파행을 거듭했고 결국 학교비정규직노조 지도부들은 추석명절을 단식과 노숙농성으로 차디찬 길바닥에서 보내야 했다. 추석이 지나고 김상곤 교육부 장관의 농성장 방문과 교섭재개 약속으로 노숙단식농성은 해소했고 어렵게 교섭이 재개됐다. 밤샘 교섭을 강행하며 지난 27일 새벽 6시에 잠정합의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에서는 공무원 대비 80%의 임금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근속수당과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통상임금 산정 기준시간 243시간) 보장 등의 내용으로 교섭을 주도해 나갔다. 교육청과 교육부의 최저임금 인상 꼼수가 결국은 인건비 절약이 아닌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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