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가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병원 내 갑질문화와 인권유린 근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는 식의 인권침해로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이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비단 성심병원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38일째 파업을 이어 가고 있는 을지대병원·을지대을지병원 노동자들이 ‘갑질문화’ 사례를 폭로했다.

◇ 짧은 바지 입고 장기자랑“거부 힘들었다”=보건의료노조 을지대병원지부·을지대을지병원지부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발생했던 부조리한 일들을 고발했다. 2014년 을지병원 신규 간호사였던 A씨는 당시 주임 간호사에게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교수를 비롯한 직원들이 참석하는 송년회 장기자랑 때 몸에 달라붙는 상의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아이돌 그룹의 춤을 추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A씨는 “작은 옷을 입고 춤을 추려니 민망했다”며 “심하게 강압적이진 않았지만 연차 높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거절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남성 간호사 B씨도 “선배들이 송년회 때 여장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B씨는 “강하게 반발해서 여장은 안 했지만 춤을 춰야 했다”며 “내가 이러려고 간호사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을지병원의 경우 송년회는 2015년부터 열리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과 노조 설립 영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례식장 동원된 계약직 직원”= 임신한 직원에게 무리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C씨는 임신을 상태에서 락스 섞인 소독제로 병원을 청소하거나 오물을 치운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병원 관리자가 "평가인증제를 준비해야 한다"며 직원들에게 내린 지시사항이었다. C씨는 “몸 상태도 안 좋고 입덧도 하는 상태였는데 쓰레기통을 뒤지고 락스를 뿌리며 오물 냄새를 맡는 것이 힘들었다”며 “사직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C씨는 “병원이 간호사 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보니 청소까지 하는 일이 발생했다”며 “간호사가 임신을 해도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하소연했다.

병원 회장 장례식에 동원된 사례도 있었다. 의료기사 D씨는 몇해 전 병원의 전직 회장이 숨졌을 때 팀장에게 장례식 일을 도우라는 요구를 받았다. D씨는 “나 같은 경우 거부했지만 다른 부서 직원, 특히 계약직 직원들은 대부분 장례식장에 가서 안내·접대 일을 도왔다”고 말했다. D씨는 “같은 병원 식구로서 일을 도울 수도 있지만 자의가 아닌 강압에 의해 이뤄진 다는 것이 문제”라며 “당시 중간 관리자들이 이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 병원에 만연한 ‘군대식 문화’=원인은 병원 내 군대식 문화에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간호사 B씨는 “병원에 태움문화(직장내 괴롭힘·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가 남아 있다”며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거나 업무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식으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쉽게 선배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경영방침 변화가 해결책의 하나로 제시됐다. 간호사 E씨는 “권위적 문화의 배경에는 인력 부족이 있는 것 같다”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다 보니 권위적인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주장했다. E씨는 “병원이 간호사를 도구로 보는 것도 문제”라며 “병원이 먼저 직원을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교육을 통해 이같은 문제를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주호 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아무래도 노조가 있는 곳은 덜 하지 않겠냐”며 “노조를 통해 이 같은 문제가 방지되도록 노조 설립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날 보건의료노조는 임금·휴가·노동·모성·성희롱·폭력·지시·비품·정치·의료갑질을 병원 내 10대 갑질 문화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정부에 촉구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에 면담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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