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최고의 디딤돌 판결에 삼성전자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뽑혔다. 최악의 걸림돌 판결에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20억원의 손해배상액을 부과한 부산고법 판결이 선정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11월14일까지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 결정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각각 10개의 디딤돌과 걸림돌 판결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민변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2017년 한국인권보고대회’를 개최했다.

◇삼성전자 다발성 경화증 산재인정 최고 판결로=민변은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대법원이 올해 8월29일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에게서 발병한 희귀질환인 다발성 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판결을 꼽았다. 1·2심은 원고 업무와 다발성 경화증 발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유해화학물질 측정수치가 노출 허용기준 범위에 있고, 업무와 질병 간 상관관계가 적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역학조사 한계를 지적하고 사용된 화학물질 공개를 거부한 삼성전자와 정부에 책임을 물었다. 입증책임 전환 판결로 풀이되기도 한다.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환송됐다. 민변은 “삼성전자 LCD공장에서 근무한 노동자의 직업병을 인정한 첫 사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지난달 14일 대법원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에 걸려 숨진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인정한 판결도 디딤돌 판결로 꼽혔다. 뇌종양은 반도체·LCD공장에서 백혈병 다음으로 노동자들이 많이 걸리지만 대법원에서 직업병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민변은 선정 이유로 “상시적 노출 허용기준 이하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노동자에게 발병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 전향적으로 업무와 질병 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며 “노동자가 퇴직한 지 7년이 경과했다는 사정만으로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부분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악 판결은 ‘현대차 사내하청 손배 인정’=부산고법은 8월24일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2010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 파업을 지원한 4명의 노동자에게 현대차가 입은 20억원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같은해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 사건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함에 따라 지회가 정규직화를 위한 특별교섭을 요구했다. 사측이 이를 거부하자 지회가 그해 11월15일부터 12월9일까지 25일간 파업을 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22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결국 법원이 20억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민변은 “아무리 쟁의행위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있더라도 하급심 법원은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해 헌법적 가치인 파업권을 존중하는 판결을 해야 한다”며 “사측의 잘못을 고려하지 않고 인지대가 없어 상고도 어려운 노동자에게 수십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을 부정한 것”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올해 1월 승차요금 2천400원을 회사에 납부하지 않은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광주고법 판결도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민변은 “해당 판결은 징계사유의 존부, 해고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 부분이 비판받아야 한다”며 “해고 정당성의 근거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 노조할 권리 보장 서둘러야”=이와 함께 이날 민변 한국인권보고대회에서 발표된 한국인권보고서(노동 분야)에는 △성과연봉제·2대 지침 폐기 △최저임금 16% 인상(시급 7천530원) △불법파견 판정과 직접고용 시정지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직장갑질 119 출범이 주요 이슈로 담겼다. 민변은 △문재인 정부 집단적 노사관계 제도개선 △노조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한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 3권 인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민변은 “정부는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기피하고 대리운전기사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는 등 노조할 권리를 위한 조치를 미루고 있다”며 “국회에서 입법 추진과 함께 행정부에서 할 수 있는 제도개혁 조치를 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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