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일터를 잃은 옥시레킷벤키저 익산공장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법적인 싸움에 들어갔다. 노동자들은 회사가 “근로자대표 선출 과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음에도 정리해고를 일방적으로 추진한 데다 단체협약에 명시된 노조 합의 조항을 무시했다”며 부당해고를 주장한다.

과반수 지지 얻지 못한 근로자대표?

10일 옥시레킷벤키저노조(위원장 문형구)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7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난달 30일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 37명은 “해고를 피하기 위해 노조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데도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대표를 선출해 정리해고를 강행했다”며 “법원 역시 회사가 뽑은 근로자대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만큼 정리해고는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근로기준법(2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 기준을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대표)에 해고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 옥시레킷벤키저 단체협약(20조)도 “해고 회피 방법과 해고 기준을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는 익산공장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보하기 전인 9월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자대표 선출을 공고했다. 문형구 위원장과 함께 입후보한 오아무개씨는 후보자등록이 종료된 직후 입후보 의사를 철회했다. 회사는 선출절차를 그대로 진행했고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이에 반발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체 노동자 151명(서울 본사 89명·익산공장 62명) 중 76명만이 투표에 참여했고, 오씨는 61표를 받아 근로자대표에 선출됐다.

노조는 “오씨는 후보자등록이 종료된 이후 입후보 의사를 철회했으므로 후보가 될 수 없다”며 “노동자 151명 중 과반수인 76명 이상의 표를 얻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오씨는 재판에서 “서울 본사에서 (또 다른) 근로자대표 입후보자가 나온 것으로 착오해 입후보 의사를 철회했을 뿐”이라며 “근로자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반수 득표를 받지 않더라도 근로자대표로서 협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오씨와 협의를 거쳐 10월 익산공장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노조는 근로자대표 선출 과정상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난달 법원에 오씨에 대한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아울러 "자격이 없는 근로자대표와의 협의에 따라 진행된 정리해고 역시 무효"라고 반발했다.

법원 “근로자대표 재선출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

지난달 서울남부지법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익산지청은 노조 주장을 받아들여 “근로자대표 선거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존재한다”며 회사에 “근로자대표를 다시 선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24조에 따라 50일 이상 성실하게 협의할 것”을 촉구했다.

회사는 근로자대표 재선출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회사는 지난달 29일 노조에 “귀 조합 대표를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며 “하지만 직원들의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 귀 조합 대표와 진정성 있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문형구 위원장은 “회사는 형식적인 노사협의 요청 공문을 보내면서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무시하고 있다”며 “근로자대표 선출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드러났고, 그 근로자대표와 협의하에 이뤄진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지적했다. 문 위원장은 “부당해고를 바로잡고 가습기 살균제와 상관도 없는 익산공장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익산공장에서 옥시크린·물먹는 하마·파워크린 같은 세탁 생활용품을 생산했다. 문제가 된 가습기 살균제는 경기도 화성 화학공장에서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OEM)으로 납품받았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상관없는 익산공장을 폐쇄하고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을 내보냈다. 익산공장 부지와 건물·생산설비 일부는 LG생활건강 자회사인 해태htb에 양도한 상태다.

익산공장 노동자들은 “우리는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며 “자산매각 과정 진상규명과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청와대와 국회·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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