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얘기를 나누던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지부 간부 4명이 한꺼번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고 이은주 전 지부장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김은선 지부 여성부장이 입을 열었다.“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이은주 지부장님이 너무 불쌍해요.” 목소리가 떨렸다. 김은선 부장은 “그 일을 겪고 더 악에 받친 것 같다. 그런 부조리한 일들을 반드시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주 전 지부장은 지난달 26일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그는 수간호사급 연차였지만 5~10년차 간호사들과 함께 응급실 3교대 근무를 했다. 노조 관계자들은 그가 수간호사가 되지 못한 이유를 “노조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많은데도 3교대 업무를 한 것이 그를 과로로 내몰았다고 봤다.

이 전 지부장의 죽음 뒤 지부는 노조 복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장례를 치른 뒤 매일 부서 순회와 중식·퇴근 선전전을 하며 조직화에 나섰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9일 오후 민주노총 인천본부에서 지부 간부 4명을 만났다.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서품식이 있었던 이날 저녁 인천교구청 앞에서는 인천성모-국제성모병원 정상화 촉구 인천시민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부당노동행위와 국제성모병원 돈벌이 경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매일노동뉴스 집담회에서도 노동자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집담회에는 류재일(46) 지부장 직무대행·황경희(43) 부지부장·홍명옥(56) 지부 지도위원·김은선(46) 여성부장이 참여했다. 류재일 직무대행은 병원 영상의학팀 방사선사다. 인천성모병원에선 22년 넘게 일했다. 황경희 부지부장은 21년차 간호사, 김은선 여성부장은 24년차 간호조무사다. 홍명옥 지도위원은 노조활동을 하다 2016년 1월 해고됐다.

정기훈 기자


사회 : 최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성모병원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병원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홍명옥 : 부당 내부거래 진상규명 같은 요구는 현상적인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2005년 말 인천교구가 병원 경영을 시작하면서 정체성이 급격히 훼손된 것이다. 그 사이 공공성이 아닌 돈벌이에 관심이 집중됐다. 돈벌이 경영을 하느라 노동권·인권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1천800명 노동자가 일하고, 하루 수천명 환자가 오가는 가톨릭대학병원의 정체성을 복원시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신규환자 유치 압박에 가게에서 명함 뿌렸다”

사회 : 돈벌이 경영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홍명옥 :  평직원과 중간관리자인 팀장은 신규환자 유치 압박이 심하다. 재진 환자들은 약만 받아가는 반면 신규환자는 여러 검사를 할 수 있어 수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병원 경영진이 바뀌기 전까지 ‘123운동’이라는 것을 수년간 했다 ‘매월 1명의 직원이 2명의 신규환자에게 병원 특장점 3개를 소개한다’는 운동이다. 123운동 일환으로 ‘병원 바로 알기’책자를 배포해 전 직원이 시험을 보기도 했다. 직원들은 매달 신규환자 등록결과를 입력해야 했고, 부서장들은 부서장회의 때 부서별 신규환자 유치 결과를 공개하고 순위를 매겼다. 실적이 저조하면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류재일 : 직원들이 마치 영업사원처럼 환자 유치에 나서기도 한다. 특히 중간관리자인 팀장·부팀장은 미용실처럼 아무 가게에나 무작정 들어가 명함을 뿌리는 방식으로 병원을 홍보한다. 병원에 왔을 때 자신에게 연락을 주면 할인해 준다는 식으로 환자를 끌어모은다. 아들딸 어린이집이나 학부모 모임, 남편 회사 동료들 회식자리에 가서 명함을 뿌리는 직원도 있다고 들었다.

황경희 : 환자 진찰권에 ‘안과 황경희’같이 자신의 이름을 매직펜으로 써 놓는 직원이 있다. 내가 유치한 환자니까 잘 봐 달라는 뜻이다. 이런 진찰권을 볼 때마다 놀란다.

김은선 : 환자를 많이 모아 온 직원은 본연의 일에서 빠지기도 한다. 유치한 환자와 함께 다니면서 병원을 소개하게끔 하는 거다. 자연스럽게 같은 팀 부서원들의 일은 많아진다.

홍명옥 : 이런 유치활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알아봤는데, 의료법에 유인 알선 금지조항이 있었다. 그런데 강제로 유인돼 진료를 했는지 입증해야 법 위반이더라. 의료법이 너무 허술하다.

 
“의사들도 매출 실적 압박, 과다 진료까지”

김은선 : 교수들도 매출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다. 매달 1등부터 10등까지 매출 실적에 따라 등수를 매긴다. 등수가 떨어지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정받기 위해 필요 없는 검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수들끼리 “이건 딱 봐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검사인데 했다”는 말도 들었다.

홍명옥 : 실적을 올리려고 해당 과가 아닌 곳에서 먼저 CT를 찍은 뒤 보내는 경우도 있다. 교수들끼리 환자를 놓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른 병원도 어느 정도는 병원 실적 관리를 하겠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사회 : 병원이 왜 이런 방식으로 경영한다고 생각하나.

황경희 : 2005년 인천교구는 병원을 인수하면서 적자가 너무 많다며 실적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는 명분을 쌓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명분을 받기에는 너무 병원이 거대해졌다. 지금은 어마어마한 흑자를 내는 것 같은데, 병원은 수익이 적다고만 한다.

홍명옥 : 실제 수익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노조가 교섭할 때마다 병원 수익 공개를 요구했는데도 병원은 몇 줄짜리 자료를 형식적으로 공개했다. 신빙성이 없다. 병원 경영상황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투명한 경영을 해야 한다.

“노조 탄압에 조합원 230명에서 10명으로 줄었다”

사회 : 노조 탄압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부당노동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은선 : 부서 이동 때 불이익을 받았다. 노조활동을 하면 힘든 부서로 배치된다. 1998년에 수술실에서 일했다.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 부서장 면담을 통해 1년 지나서 다른 부서로 갔다. 다른 힘든 부서도 좋으니 수술실만은 나가게 해 달라고 해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0여년 뒤 노조탈퇴 요구를 거부하자 중환자실을 거쳐 수술실로 보냈다. 그렇게까지 사정해서 나왔는데 정확히 같은 곳에 보내졌다. 너무 화가 났다.

류재일 : 사실 예전부터 왕따를 당했다. 연차로 따지면 후배들이랑 일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보직자(부팀장) 감시하에서 일한다. 경력이 많은데도 그에 맞는 보직에 오르지 못했다. 과거엔 내가 신규직원과 이야기하면 병원이 그 직원을 불러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보고하게 했다. 나랑 얘기만 하면 불려 가니까 미안해서 이야기를 안 하게 됐다.

황경희 : 나는 20년차 간호사다. 대개 고경력자들은 통상근무를 하는데, 15년 동안 3교대를 하다가 최근 병실로 갔다. 지금은 3교대는 아니지만 내 연차에 하기엔 버거운 일이다.

홍명옥 : 지부장으로 활동하던 2016년 1월7일 해고됐다. 일터 괴롭힘으로 인해 쓴 병가가 무단결근이고, 병원의 여러 가지 문제를 알린 것이 명예훼손이라는 이유였다. 당시 병원에 돈벌이 경영을 중단하라는 투쟁을 했다. 최근엔 부당 내부거래 혐의를 받았던 박문서 신부가 인사조치 됐는데도 병원 관리자가 1주일 만에 복수노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너무 많은 고소·고발을 당했다. 2016년과 지난해 각각 학교법인 가톨릭학원과 인천가톨릭학원이 문제제기하는 노조와 사회단체 간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각각 5억5천100만원과 1억원의 배상액을 제시했다. 모두 1심에서 기각됐다. 고소인이 가톨릭학원이다. 결국 가톨릭학원 운영자인 염수정 추기경과 정신철 주교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소를 한 것이다.

사회 : 조합원수가 대폭 줄었는데 힘들지 않았나. 그럼에도 노조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뭔가.

황경희 : 당연히 힘들었다. 자괴감도 심했다. 2006년 사무실에 (노조 탈퇴) 내용 증명이 정말 많이 쌓였다. 그래도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동지애로 버텼다.

홍명옥 : 나는 의리다. 의리.(웃음) 우리 중 학생출신 운동권은 한 명도 없지 않나.

김은선 : 정말 의리다. 나보고 어떤 중간관리자가 말했다. 여우가 되라고. 그런데 난 그렇게 살 자신도 없고, 비굴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 자식들에게 힘든 과정에서 소신을 지켰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정기훈 기자


인천성모병원(옛 성모자애병원)은 2015년 말 천주교 인천교구 인수 뒤 병원 규모가 서너 배 커졌다. 직원도 500명에서 1천800여명으로 늘었다. 반면 조합원은 2005년 230여명에서 2013년 10여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말 이은주 전 지부장이 숨지면서 9명이 됐다. 2006년에만 조합원 160여명이 탈퇴했다. 지부는 “병원의 노조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 이은주 전 지부장 이야기가 나오자 이내 하나둘씩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은선 : 고생만 하다가 가신 지부장님이 너무 불쌍하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병원 경영진들이나 부역자에 대한 분노가 더 새록새록 나오는 것 같다. 그런(부조리한) 일들을 반드시 처단하고 싶다.

황경희 : 지부장님은 병원에 찍혀서 밤 근무도 많이 했다. 이례적인 근무 형태다. 이은주 전 지부장이 홍명옥 지도위원이 괴롭힘을 당했을 때 같은 부서에 있으면서 "여기서 이러시는 것 아니다"고 막았다는 이유 하나로 50세 넘은 상태에서 응급실 3교대를 했다. 1년 동안 바뀐 시스템으로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걱정하지 마”라고 하면서 잘 버텼다. 지부장 자리를 맡기 부담스러워서 서로 눈치보고 있을 때도 “내가 맏언니니까 그냥 내가 해야겠다”고 웃으며 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전에 내가 아닌 다른 선을 넘어온 것 같은 기분이다. 그냥 이렇게 끝내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 : 최근 노조가 다시 조직 확대에 나섰다. 반응이 어떤가.

김은선 : 병원의 방해로 어려움이 많다. 오래된 직원들은 대부분 노조에 가입하면 근무지 배치에서 불이익 당할까 봐, 보직에서 해임될까 봐, 심지어 해고될까 봐 무서워서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비밀은 보장해 준다고 말하면서까지 노조 가입을 권유해야 하는 사실이 슬프다.

황경희 : 그래도 그중엔 연차 높은 선생님들이 먼저 용기 내서 가입해 주는 경우가 있다. 여태까지 못 지켜 줘서, 그동안 함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가입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홍명옥 : 노조활동을 해 본 적 없는 어린 간호사들도 복수노조가 문제가 많은 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관리자들이 강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복수노조에 가입하는 이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회 :  앞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면.

홍명옥 : 아무리 새로운 경영진이 올바르게 하겠다고 뜻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노조 정상화 없이는 허언이라고 생각한다. 노조 정상화를 이뤄 내야 한다. 견제 없는 권력은 부패하게 돼 있다. 이걸 빼 놓고는 다른 방식의 부패가 또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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