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2018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급 7천530원, 주 소정근로 40시간을 근무할 경우 월 157만3천770원이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생계급여 등의 기준이 되는 2018년 1인 기준 중위소득은 167만2천105원이다. 바꿔 말하자면,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소득 수준은 여전히 전체 가구의 중위소득(총 가구 중 소득 순으로 순위를 매긴 후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보다 낮은 층에 속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법정 최저임금 수준이 가장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임금을 지불해야 할 사용자측 반발이 거세다. 정권교체 바람 속에 비교적 큰 폭의 인상이 이뤄진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아예 국가적 이슈가 됐다. 반발은 대규모 사업장, 재벌 사업장에서 가장 거세다.

연세대를 필두로 홍익대·덕성여대·숙명여대·동국대 등 대학들도 정년퇴직자의 일자리를 단시간 알바로 대체하는 식으로 인건비를 줄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16년 기준 누적적립금이 5천307억원이 넘는 연세대는 청와대에서 비서관들까지 보내 조정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축소와 인건비 삭감을 고집하며 노조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가 사용자라 할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요양보호사에게 지급하던 시간당 625원의 처우개선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향으로 고시를 개정했다. 재가 요양보호사를 기준으로 할 때 요양보호사 임금은 월 57만원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처럼 열악한 요양보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2013년부터 월 최대 10만원 수준으로 지급하던 처우개선비마저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불력이 충분한 재벌 사업장 역시 반발이 거세다. CJ대한통운 등 재벌 택배회사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택배기사들은 지난해 11월 어렵게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대리점 폐업 등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는 CJ대한통운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루 13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 그중에서도 5~6시간을 차지하는 택배 분류작업은 CJ대한통운의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택배 기사들의 무임 노동으로 이뤄지고 있다. 택배 기사들이 월평균 250만원 정도 번다고 해도 이러한 장시간 노동 실태를 고려하면 사실상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저임금이다.

재벌에서 공공부문까지 낮은 임금 수준만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연장근로시간과 가산수당 관련 논란이나, 대법원에서 공개변론까지 진행된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지급 문제의 핵심 역시 저임금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으로는 먹고살 만한 소득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보상 수준이 높은 연장근로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의 대책은 아직까지는 이전 정권들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인건비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시행이나, 직무급 체계 개편을 통한 임금 억제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재벌이나 부유층이 수취하는 초과이윤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노동자 내부에서의 소득분배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노동자 전체에게 분배되는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내부에서 파이를 나누는 방식만 조정하려는 식이다.

그러나 재벌과 자본이 독식하는 초과이윤을 손대지 않고서 저임금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역사는 저임금·수탈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위로부터의 강력한 개혁, 혹은 아래로부터 강력한 노동운동의 도전이 변화의 필요조건이었음을 보여 준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전자가 실현됐던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1987년’으로 그 가능성을 한 번 보여 준 바 있다.

임금 수준, 임금체계, 차별적 고용형태 등 모든 면에서 저임금을 강제하는 저임금 공화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제 최저임금 지키기를 넘어서 노동운동은 자본의 이윤 독식에 도전하는 세력이 돼야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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