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 위원장과 한국경총·대한상의 회장, 고용노동부 장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지난달 31일 성사됐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양극화 해소, 노동 3권 보장과 같은 의제가 논의된다. 초반 가장 큰 쟁점은 사회적 대화기구 틀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다. 노사정위 해체를 포함한 대화기구 위상과 독립성 확보 방안 같은 쟁점이다. 당사자와 전문가에게 의견을 들었다.

대통령 자문기구 한계 명확하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 자문기구 정도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간 역사를 돌이켜 보면 노사정이 합의했거나 대화를 나눴던 사안도 국회로 넘어가면 다시 논의가 반복된다. 국회는 해당 문제를 처리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노사정 주체들만의 협의·양보·타협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웠다. 이 문제 해소를 위해 적어도 국회에 자문을 할 수 있는 기능이 보완돼야 한다. 중요한 입법 사항이 있을 때 노사정위에 정례적으로 자문을 하도록 하고, 정당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기 전에 위원회 의견을 존중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갖춰야 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접점을 최대한 좁혀 주고, 그 합의한 내용은 되도록 국회가 수용하게 반복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꼭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화에 여성·고령자·청년 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참여해 논의나 토론을 할 필요는 있지만 사회적 합의는 논의참여 주체가 그 합의를 이행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의결 과정에서 노사 중심성을 기반으로 하되 사회적 환경에 맞는 참여주체의 폭과 의결방식을 개선·보완해야 한다. 업종별·지역별 회의체를 구성할 때도 노사관계의 중요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권위 있고 조직대표성이 있는 이들이 의견을 모으고 합의하고, 이행한 뒤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위원회 명칭에서 ‘발전’을 빼는 방안도 고민하자.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대화를 국한하려 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경제사회협의회나 사회경제협의회로 그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주택·도로·교통·환경·에너지계획 등 논의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다.

업종별·의제별로 중위수준 협의·합의 활성화 필요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사정위 간판을 내리고 참여주체를 대폭 확대하면서 사실상 고용노동부가 좌지우지하던 운영방식을 새롭게 하자는 데 동의한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회적 대화기구에서는 업종별·의제별로 중위수준에서의 다양한 협의와 합의가 활성화돼야 한다. 과거에도 업종별·의제별 협의체가 가동됐고 합의를 도출한 적이 있지만 주요 산업·공공부문을 장악하고 있던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이제 민주노총까지 참여하고 여러 주체를 포괄하는 사회적 대화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업종별·의제별 대화채널들이 활발하게 만들어져 가동될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 얘기되고 있는 정치권 참여는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여야 정치권이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할 경우 사회적 합의를 입법화하는 데 수월한 측면이 있지만, 당리당략에 따라 사회적 대화기구 내 합의가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 논의를 길게 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분기 내에 논의를 끝내면 4월 임시국회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명분이 없다. 이와는 별개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와 휴일근로 중복할증 문제가 최근 현안인데, 노동계가 이를 고리로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논의를 비토하면 안 된다. 사회적 대화기구와 현안은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 앞으로 새롭게 구성될 사회적 대화기구에서는 지난 20년간 노사정위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노사정이 신뢰를 쌓는 작업을 하는 게 급선무다. 지난해 대통령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해 노동존중 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논의하면 된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나 노조할 권리 보장 같은 기업쪽에서 부담스러운 어젠다가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노동계도 한 술에 배부르려 하지 말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한걸음씩 나가는 전략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하고 개선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문제도 다뤄져야 한다.

박빙의 노사정대표자회의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으로 표현되는 얇은 얼음. 박빙(薄氷)이다. 지금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마치 박빙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지난해 9월26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제안한 지 넉 달이 지난 지난달 31일 마침내 노사정 대표자 6명이 새로 이전한 노사정위에서 만났다. 노사정위는 대표자회의 직후 브리핑 자료에서 “노사정 대표자들은 이날 사회적 대화를 복원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양극화 해소,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보장,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고령화 등 시대적 과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노사정대표자회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을 위한 부대표 또는 실무급 논의가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개편방향은 그동안 노사정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아 온 만큼 이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다. 보다 독립적인 기구로서의 사회적 대화기구 위상 재정립과 논의의제 확장, 업종별협의체 등 다양한 논의구조 설치 문제 등 여러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는 기존 노사정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양극화 해소와 노동 3권의 온전한 보장 등 노동존중 사회 실현과 우리 사회 근본적인 대전환을 위한 시대정신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국회와 정부가 노동계가 반대하는 일을 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지금 국회에서는 2월 중 노동계가 반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악 움직임이 있는 데다,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지속되는 데 있어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모처럼 열리게 될 사회적 대화에 국회와 정부가 찬물을 끼얹는 일을 하지 말아 주길 부탁한다”는 김주영 위원장의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사회적 대화, 업종별협의체·산별교섭과 병행해야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민주노총 내부에서 ‘사회적 대화’는 금기시돼 온 주홍글씨였다. 과거 사회적 대화는 노조 팔을 비틀어서 정부 정책을 관철하는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 유산에서 벗어나 올바른 사회적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기존 사회적 대화기구에 대한 현장의 불신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촛불혁명이 요구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인 ‘사회 양극화와 차별해소, 헌법에 보장된 노조할 권리와 노동시민권 보장, 양질의 일자리, 일터 민주주의, 사회연대’를 논의하면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실천하는 장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구의 ‘독립성 확보’와 ‘노동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의제 선정과 운영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정부가 먼저 의제를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시의적절한 발언이다. 추진방식도 무리한 합의나 대타협을 추구하기보다 충분한 ‘협의와 소통’을 통해 합의의 수준을 점차 높여 나가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둘째, 사회적 대화는 전체 교섭구조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만 외딴 섬에서 홀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노사관계 사회화’를 위해 산업·업종·지역별협의체를 병행 추진하고, 노정 정책협의와 초기업교섭(산별교섭) 활성화도 적극 지원해야 사회적 교섭의 전체 그림이 완성될 수 있다. 이럴 때 공장 안에 갇힌 노사관계는 기업을 넘어 산업과 사회 속으로 나아갈 수 있고, 공공적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장은 사회적 대화에 심한 트라우마가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현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기 보다는 현장과 충분히 소통하고 토론하는 속도조절·호흡조절이 필요하다.

무리한 합의도출 보다 대화에 집중하자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바람직한 사회적 대화기구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사정위 명칭을 바꾸자는 얘기부터 수많은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결정해야 한다. 특히 향후 사회적 대화 과정에서는 대화 채널로서 축적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노사정위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비롯해서 해외의 대다수 사회적 대화 내지 사회협약은 사회·경제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고자 마련됐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의식은 심각한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풀어야 할 많은 과제들이 있겠지만 우선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잡아야 한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같은 다른 대다수 문제의 해결도 수월해 질 수 있다.

이제 사회적 대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의견 차이가 첨예한 법 개정 문제를 의제로 다룰 경우 갈등 해소를 위해 어렵게 마련한 자리가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부적인 법 규정이나 정책은 국회나 정부에 맡기고, 큰 틀의 방향을 논의하길 바란다. 또한 노사정위가 ‘소통과 협의’기구로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무리하게 합의를 도출하려는 데 집착해서는 대화기구 운영에 한계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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