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원은 대표적인 감시·단속직이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기도 한 공공기관 용역업체가 시설·경비 업무를 감시·단속 근로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에 휩싸였다.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무력화하려는 속내로 풀이된다.

근무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감시·단속직은 대표적인 포괄임금제 대상 직군이다. 근로기준법 63조(적용의 제외)에 따라 고용노동부 장관 승인을 받으면 근기법상 근로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노동시간에 제한이 없고, 연장·휴일근로 가산수당과 주휴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합법적인 '공짜 연장근로'가 가능해진다.

해당 업체는 노동부 장관에게서 감단직 근로 승인도 받기 전에 연장근로수당이 ‘0원’인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요했다. 논란이 일자 근로계약일을 변경하고 연장근로수당이 포함된 근로계약서를 다시 노동자들에게 배포했다.

노동부 승인 전 감시·단속 근로계약서 작성 요구

4일 정의당 비정규 노동 상담창구 ‘비상구’에 의하면 경기도 산하기관인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이달 2일 용업업체 ㅍ사로부터 근로계약서를 받았다. ㅍ사는 지난해 12월15일 스타트업 캠퍼스와 기계·전기·소방·청소·경비 업무 관련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계약기간은 2년이다.

문제는 2일 배포된 근로계약서가 네 번째라는 것이다. 지난달 3일 업체가 내민 첫 번째 근로계약서에는 임금과 근무시간·근로형태·시간급에 따른 연장근로수당이 잘못 기입돼 있었다. 노동자들이 수정을 요구하자 업체는 받아들였다.

7일 뒤인 10일 ㅍ사는 기계·전기·소방 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감단직 근무동의서와 함께 두 번째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24시간 교대근무일 때 9시간이던 휴게시간이 6시간으로 줄어 있었고, 연장근로수당란은 비어 있었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한 달 평균 44만원가량 연장근로수당을 받았다.

시설관리업무를 하는 A씨는 “용역업체 관리소장이 시설관리 교대근무자들을 불러 근로계약서와 감단직 근무동의서 서명을 요구했다”며 “서명을 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며 작성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리소장에게 노동부 감단직 승인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데다, 휴게실이 없어 감단직 승인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항의했다”며 “그러자 용역업체가 기계전기감사실을 급작스럽게 휴게실로 둔갑시켜 버렸다”고 전했다.

감단직은 주로 감시를 하거나 대기시간이 긴 업무를 말한다. 시설관리나 경비원이 감단직에 속한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르면 △수위·경비원·물품감시원 또는 계수기감시원처럼 심신의 피로가 적은 노무에 종사하거나 △감시적인 업무가 본래의 업무지만 불규칙적으로 단시간 동안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사업주 지배하에 있는 1일 근로시간이 12시간 이내인 경우 또는 수면시간이나 휴게시간이 8시간 이상 확보되는 경우 감단직 근로로 인정한다. 다만 △평소 업무는 한가하지만 기계고장 수리 등 돌발적인 사고발생에 대비해 대기하는 시간이 많고 △실근로시간이 대기시간의 반 정도 이하인 업무로 8시간 이내이며 △대기시간에 노동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수면 또는 휴게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ㅍ사가 노동부 성남고용노동지청에 감단직 승인신청을 접수한 것은 지난달 12일이다. 노동부는 같은달 19일 사업장을 방문해 근로시간과 근로계약서, 휴게실 등을 조사했다. 성남지청 관계자는 “감단직 승인신청 접수만 들어온 상태”라며 “아직 인가는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동부 인가는커녕 승인신청을 접수하기도 전에 노동자들에게 감단직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한 것이다.

“근무시간 늘고 연장근로수당 줄고”

ㅍ사는 근무시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세 번째 근로계약서를 지난달 23일 재배포했다. 여기에도 연장근로수당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A씨는 “노동부 감단직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감단직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항의하며 연장근로수당 지급을 요구했다.

ㅍ사는 이달 2일 네 번째 근로계약서를 노동자들에게 배포했다. 두 번째·세 번째 근로계약서에 없던 연장근로수당(16만9천216원)이 포함됐지만 근로계약기간이 지난해 12월15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로 명시돼 있었다. 계약기간이 종료된 이후에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셈이다. 새롭게 포함된 연장근로수당도 기존 44만원보다 훨씬 적었다. A씨는 “업체 변경 후 실노동시간이 3시간 늘었지만 연장근로수당은 16만9천원으로 대폭 삭감됐다”고 비판했다.

ㅍ사 관계자는 감단직 근무 동의서 작성과 네 차례에 이어진 근로계약서 변경에 대해 “지난해 용역계약 체결 당시 감단직 승인이 된 것으로 알았다”며 “추후 승인이 안 된 것을 알고 뒤늦게 노동부에 신청하면서 착오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네 번째 근로계약서의 연장근로수당과 계약기간과 관련해 “연장근로수당은 평균 주간근무시간과 교대근무시간을 계산해 월 소정근로시간 209시간을 초과하는 44시간에 대해 50%를 가산했다”며 “감단직 근무 승인을 위해 노동부에 제출한 근로계약서에는 근로계약일이 올해 말까지로 돼 있고, 이번에 배포한 근로계약서는 노동부 승인 전 기간에 대한 근로계약이기 때문에 날짜를 1월31일까지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부 승인이 나면 근로계약일은 자동으로 올해 말까지가 된다”고 덧붙였다.

ㅍ사 관계자는 감단직 근로를 신청한 이유에 대해 “매년 최저임금이 올해처럼 10% 이상 인상된다면 감단직 승인이 나지 않는 이상 (최저임금 인상률을) 따라갈 수가 없다”며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고려해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감단직 근로 승인요청과 반복된 근로계약서 변경에 관해 묻자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할 때 감단직 운영에 대해 사전에 얘기된 바 없다”고 밝혔다.

최강연 공인노무사(정의당 비상구)는 “시설관리 노동자의 연장근로시간은 대략 계산해도 월 100시간에 달한다”며 “마지막 근로계약서의 연장근로수당은 근무시간은 물론 가산비율도 잘못 반영된 엉터리”라고 비판했다.

최 노무사는 “2015년 감단직 노동자에도 최저임금 100% 지급이 적용된 뒤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시간당 임금을 올려 최저임금을 편법적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감단직 규정과 노동부의 형식적인 승인은 노동자에게 ‘공짜로 일하라’는 갑질이자 노동자 무료이용권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민간 용역업체가 공공기관과 계약을 맺은 경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도급계약금액 변경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다, 변경할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다”며 “기획재정부가 국가계약법 시행규칙을 바꿔 계약금액 변경기준을 완화하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현장에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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