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인천 남동구 조경시설물 생산업체 A사에서 일했던 김아무개(60)씨. 그는 지난해 4월 회사에서 이상한 요구를 받았다. 회사는 그에게 비수기 경영난을 이유로 B사로 소속을 바꿔 일하라고 했다. B사는 A사에서 생산을 총괄하던 강아무개 본부장이 급하게 세운 회사다. A사 직원은 9명이었다. 김씨는 회사가 "이적 후에도 근로조건에 후퇴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자 전적에 동의했다.

김씨를 포함한 생산직 4명이 B사로 옮기면서 A사에는 영업·경리담당 직원 5명이 남았다. 그런데 회사는 지난해 12월 김씨를 해고했다. 상시근로자 4인 이하 사업장에 속한 탓에 근로기준법상 권리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없었다.

A사에서 11년을 일한 김씨는 “B사로 소속이 바뀐 후에도 시흥에 있는 공장으로 출퇴근하며 A사에 있을 때와 똑같은 업무를 했다”며 “회사가 근기법에 따른 가산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생산직만 개인회사로 보낸 뒤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직원을 해고한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4인 미만 개인회사로 가라더니 결국 해고"

18일 노동계에 따르면 새해 최저임금 대폭 상승을 전후해 법적 책임과 인건비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이른바 ‘회사 쪼개기’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말부터 운영하고 있는 최저임금위반 신고센터(1577-2260)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법인을 분리하고 직원을 전환배치한다는 노동자들의 제보가 수시로 접수되고 있다. 법인분리는 영세·제조 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공단에서 자주 발생하는 근로기준법 회피 수단 중 하나다.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것과 맞물려 회사 쪼개기와 관련된 상담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최근 A사와 사업장 규모가 유사한 C사업장의 제보를 받았다. 박주영 노무사는 “시점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C사가 법인을 직원이 각각 4명과 5명인 2개사로 분리하고 같은 사무실에서 동일업무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실제로는 하나의 회사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쪼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분업·영세화가 회사 쪼개기 불러

근기법상 사용자는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발생할 경우 각각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해야 한다. 다만 상시 근로자가 4인 이하인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해당 사업장은 연차수당도 주지 않아도 된다. 해고도 자유롭다. 반면 최저임금은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된다. 최저임금의 영향을 직접 받는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통상임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통상임금이 오르면 이에 연동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도 오른다. 소규모 사업장들이 가산수당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사 쪼개기에 나서는 배경이다.

유선경 민주노총 인천본부 남동노동법률상담소 상담실장은 “과거에는 대규모 공장이 하나의 단위 사업장을 형성한 반면 제조업 경기하락으로 지금은 소규모 사업장으로 분화된 상황”이라며 “여기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피해 가기 위해 공단에 밀집한 소규모 사업장들이 아예 4인 이하로 사업장을 쪼개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선경 상담실장은 “경기지역 한 회사는 일자리안정자금을 받으려고 30인 이하로 직원수를 줄였다”고 덧붙였다.

B사 대표는 “김씨에게 개인회사 전적을 요구한 것은 사업상 목적에 의한 것으로 근로기준법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해고 역시 최저임금과 상관없이 경영상 이유에 따른 것”이라며 “회사가 조경시설물 직접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주문자 생산방식(OEM)으로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데, 김씨의 정년이 가까워져 불가피하게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국 곳곳서 법인분리 사례 등장

사업주의 회사 쪼개기 꼼수는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치현 대전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 활동가는 “최근 한 노동자가 주휴수당에 대한 문의와 함께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3개의 법인으로 분리됐는데 이를 통한 근기법 회피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문의해 왔다”며 “제보자가 본인 신분 노출을 꺼려 대전지역의 한 사업장으로 유추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정보는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철 금속노조 경기금속지회 수석부지회장은 “경기도 화성에 공장이 있는 프랜차이즈업체인 D사가 상시근로자 20명 규모의 법인을 4개로 분리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포괄임금제가 적용되는 사업장으로, 법인 분리를 전후해 노동자의 임금에는 변화가 없어 회사가 단순히 가산수당 회피를 위해 법인을 분리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인 법인 분리 목적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부 "법인 분리 점검, 소관 아니다"

노동계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신분 노출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최저임금 위반 신고절차를 간소화하고, ‘무기명 제보’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가 선제적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법 위반 입증책임을 노동자에서 사용자로 전환하는 것도 영세사업장 종사자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으로 꼽힌다.

박주영 노무사는 “회사 쪼개기로 임금을 줄이면서 편법적으로 노동력을 활용하는 사례가 현실에서 빈발함에 따라 별도 법인이지만 ‘공동사업주’라는 개념이 영미권에서 도입됐고 국내에서도 최근의 판정·판결로 논의가 시작된 상황”이라며 “노동부는 인건비 축소를 위해 동일한 업무를 하는 사업장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 경우 이를 하나의 사업장으로 보고 근기법이 전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법인 분리 목적을 예측하고 파악하는 것은 부처 소관이 아니며 근로감독은 16개 노동관계법이 현장에서 준수되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것인데 회사 나누기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며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최저임금 위반 사례 점검 계획을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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