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GM)가 공장을 폐쇄하거나 철수한 나라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의견이다.

21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지엠은 최근 몇 년 사이 유럽·호주·인도네시아·태국·러시아·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거나 매각한 뒤 공장을 폐쇄했다. 미국 본사는 2009년 파산 후 국유화됐다가 흑자전환을 거쳐 민영화 절차를 밟았다.

지엠 '먹튀' 역사, 정부 손길 없으면 고용위기 못 피해

전문가와 노동계는 인도·호주와 미국 본사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지엠은 지난해 인도 공장 2곳 중 내수를 담당하던 1곳을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했다. 현재 수출용 경차를 생산하는 공장만 가동 중이다. 인도 내수시장에서 지엠 차량 인기가 떨어지자 사업을 접었다. 공장을 매각하면서 정리해고가 이뤄졌지만 인도 정부는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다.

지엠 자회사였던 지엠홀덴은 2013년 12월 "호주 완성차 제조공장을 2017년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노동당 이후 집권한 오스트레일리아 보수연립(연립당)이 정부지원 중단의사를 밝히자 곧바로 공장 철수를 발표했다. 호주 정부는 지엠홀덴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재탄생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다. 영국계 자본인 GFG얼라이언스가 지난달 공장을 인수했다. 호주 정부 지원하에 전기차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엠 본사 사례도 재조명되고 있다. 2009년 당시 오바마 정부는 유동성 위기를 겪던 지엠이 파산을 신청하자 지분을 매입해 국유화했다. 이듬해부터 흑자를 내자 그해 연말부터 주식을 내다 팔아 민영화했다. 이 과정에서 100억달러(대략 10조원) 이상의 공적자금 손실을 봤다.

인도에서는 정부가 손을 놓으면서 대량 실직이 발생했다. 호주는 수년에 걸쳐 전기차로의 산업재편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기업을 살렸다. 정부 역할에 따라 지엠 사태가 다르게 전개된 셈이다.

한국지엠은 연간 90만대 이상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해 내수시장에서 13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꾸준히 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주·인도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엠홀덴이 문을 닫기 전 생산능력은 12만대, 지엠이 인도 내수시장에서 판 자동차는 2016년 기준 2만9천여대에 불과했다.

한국지엠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엠 요구대로 추가지원을 해도, 공장 문을 닫을 경우에도 실직지원이 불가피하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지엠 본사가 신차나 전기차를 투입해 한국 공장을 유지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일부 지원하고, 노조는 노동시간단축 등 임금을 일부 양보하는 형태로 3자가 길을 찾는 모습이 가장 좋은 그림"이라며 "신차 배정을 비롯한 한국지엠 생사여탈권을 본사가 쥐고 있는 한 오늘의 한국지엠 사태는 재현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언제까지 세급 투입할 건가, 아름다운 이별 준비하자"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가 주어진 상태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방안은 무엇일까.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지엠은 한국지엠에 더 이상 매력을 못 느껴 떠나겠다는 것이고 자기들을 잡아 두려면 정부가 돈을 내라고 협박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얼마를 더 세금으로 쏟아부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제는 지엠과 어떻게 아름다운 결별을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로의 전환 등 산업정책을 재편하는 기간 동안 고용위기의 강을 어떻게 건널지 고통분담·대비계획을 서둘러 수립해야 한다"며 "지엠과 협의하에 한국지엠 공장을 한동안 가동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고용규모를 최대한 유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우차부터 이어 온 역량 살리면 독자생존 가능"

한편에서는 한국지엠을 국유화하거나 이후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지엠과 한국지엠을 떼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지엠이 철수한다고 해도 수년이 걸릴 테고 호주모델을 적용하려 해도 정부 차원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며 "전기차·자율주행차로 과감하게 산업정책을 준비하고 그 기간 동안 지엠 판로를 이용해 생존한다면 오바마 정부가 했듯이 (한국지엠 국유화도) 상상 속의 선택지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대공장 노조에 대한 차가운 시선 때문에 공적자금 투입·국유화 주장을 노동계가 앞장서 내놓을 상황은 못되지만 한국지엠이 자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태를 풀어 가는 것이 맞다"며 "지금 생산차종만으로 버거울 수 있지만 대우차부터 이어 온 개발역량과 판매망을 살린다면 독자생존도 가능한 얘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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