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근 변호사(법무법인 위민)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8. 1. 19. 선고 2017나2044870 판결


1. 사실관계 

원고 병원재단 산하 국제성모병원이 가상환자를 허위진료 한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급여신청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은 뒤, 한 인터넷언론이 2015년 3월30일 피고가 보건의료노조 지부장으로 있는 인천성모병원에서 직원들에게 환자유치를 압박하고 수시로 실적점검을 했다고 보도했다. 위 보도가 있은 뒤 인천성모병원의 팀장급 간부들과 선배 간호사들이 4일간 5회에 걸쳐 근무시간에 집단으로 방문해 피고에게 위 기사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항의를 했고, 피고는 우울증을 호소하며 인사관리자에게 이러한 집단 괴롭힘의 방지를 요청했으나 병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피고는 3년 전에도 노동조합활동과 관련해 같은 방식의 집단 괴롭힘을 당해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급기야 출근 도중 쓰러져 입원치료까지 받게 됐다.

보건의료노조와 인천지역 시민단체 등은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병원 앞에서 수익창출을 위해 직원들을 쥐어짜고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권하는 돈벌이 경영을 하며, 노동조합을 폭력적 방법으로 무력화한다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홈페이지에 병원의 불법사례를 수집하는 과잉진료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그 뒤로도 위 단체들은 ‘노동탄압, 인권유린, 돈벌이 경영 각성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병원 앞과 구내식당, 가톨릭회관 등에서 피케팅을 했다. 2015년 9월부터는 민주노총 인천본부 차원에서 단위사업장에 인천성모병원 불매운동 현수막을 게시하고,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종합검진협약을 노조탄압 등을 이유로 파기했다. 피고는 국정감사 증언이나 방송사 뉴스인터뷰에서 노동조합파괴가 이뤄졌고 집단 괴롭힘이 3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인천성모병원은 민주노총 인천본부장을 불매운동을 이유로, 그리고 다른 병원 지부장 등을 구내식당 피켓팅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업무방해죄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으로 고소했는데, 일부 혐의에 대해서 기소됐지만 법원은 정당한 노동조합활동과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판결을 했다. 원고 재단은 위 노조간부들과 피고 및 시민단체 대표에게 고소한 내용과 같은 이유로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2. 판결의 요지

인천성모병원이 돈벌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환자유치를 강요하거나 의사들에게 불필요한 진료를 강요하며, 지속적으로 노동조합을 탄압해 왔다는 취지의 뉴스인터뷰, 국회토론회 발표, 기자간담회 발언, 국정감사 증언, 기자회견 호소문 등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의 발언들의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고, 발언을 한 장소·경위 등에 비춰 보면 그 내용이 헌법상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의료질서를 바로잡아 국민의 보건위생에 이바지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서 불법행위 주장을 배척했다.

피고의 인천성모병원 직원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주장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를 방문한 직원들은 팀장 또는 선배 간호사였고 그 대화 내용도 항의성이거나 심지어 저주를 포함한 말도 있었으며 수년 전의 일을 거론하며 비난하기도 한 점, 일부 대화는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뤄기도 한 점, 집단 방문은 피고의 사전 양해 없이 이뤄졌고 방문자들 중에는 피고와 일면식이 없던 직원들도 있었던 점, 원고의 직원들이 보도 이후 불과 4일 사이에 5회에 걸쳐 반복해 피고를 찾아왔고 인사노무부장은 피고로부터 이를 막아 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거나 지부의 공문을 수령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방문자들의 지위와 대화내용을 고려하면 피고가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판단되고 실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해 이를 허위이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불매운동에 대해서는 피고에 대한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 인천성모병원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원고재단에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한 점, 원고재단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이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불매운동에 이르게 됐으며 이를 통해 인천성모병원 내 노동조합 탄압 문제 등에 대해 노사 간의 협의를 이끌어 내고자 한 점,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산하 단위사업장 중심으로 불매운동 현수막이 부착된 점, 피고에 대한 집단 괴롭힘·노조활동 탄압·수익 우선 경영방침 등은 그 주요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고 단지 정황적 과장이나 주관적 평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위 불매운동이 전체적으로 법 질서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상당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불법행위 주장을 배척했다.

3. 판결 비평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노조탄압이나 노조간부에 대한 괴롭힘 등을 비판했다고 해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면 헌법상 기본권의 한 내용인 노조활동은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 또한 노조나 시민단체들이 공익적 차원에서 사용자의 경영활동을 비판했다고 해서 명예훼손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 헌법상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제도와 표현의 자유를 통한 다양한 여론의 형성을 근간으로 하는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 헌법상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올바로 작동하지 못해 숨 막히는 사회가 만들어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에는 그 행위를 위법하다고 평가해 형사책임이나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비판하는 과정에서는 비판자의 사적인 격한 감정이 드러날 수도 있고, 다소 거친 표현이나 과장이 실리게 된다. 이 경우에도 행위자의 주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동기가 내포돼 있다 하더라도 주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진실한 사실”이란 의미도 진실과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로 확대해석하면 표현의 자유의 내용인 비판활동이 크게 위축되므로,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면 세부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 이 판결은 노동조합활동이나 시민단체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사용자 내지 기업의 경영활동, 노조대응에 대한 비판활동에 대해서 그 정당성의 근거와 기준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민단체나 노조 등이 그들의 공익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나 연대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특정한 상품을 구매하지 말도록 홍보하고 설득활동을 하는 소위 불매운동은 불매운동 참여를 상대방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한 허용돼야 한다. 물론 이러한 불매운동이 일반시민들의 참여의 자유를 억압할 정도로 폭력적이거나 강요된 방식이라면, 전체 법 질서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상당성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세력행사로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불매운동이나 노동조합 단체행동의 한 방식인 보이콧은 헌법상 보장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나 일반적 행동의 자유 또는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의 내용이다. 이러한 헌법상 기본권 행사 자체를 업무방해죄로 본다면 소비자운동이나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 보장을 통해 소비자와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이뤄 경제민주화를 달성하려는 헌법의 경제질서 이념은 형해화할 것이다. 이 판결은 이러한 노동조합의 보이콧 활동과 시민단체 불매운동의 정당성 근거와 기준을 밝히고 있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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