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애진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부가 지난달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산업재해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로 28년 만에 이뤄지는 전부개정이다. 보호대상을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확장하고 사업주 책임을 강화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일각에서 전부개정안 내용이 미흡하다고 아쉬워하는 이유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들이 보완할 대목을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은 여섯 차례 개정 끝에 26조로 자리 잡게 됐다. 현행법 26조는 1항에 사업주에게 작업중지권과 노동자를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킬 안전조치의무를 부여하고 2항에 노동자에게 작업을 중지하거나 대피할 권리, 상급자에게 보고할 의무와 이에 대한 상급자의 조치의무를 뒀다. 3항에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인정되면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에게 이를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없음을, 4항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중대재해 발생시 원인규명과 예방대책 수립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 5항에는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현장을 훼손해 4항의 원인조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됐다.

이상과 같은 작업중지권 규정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 노동자 작업중지와 대피 요건인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나 노동자의 작업중지 행위가 정당화하기 위한 요건인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런 탓에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놓고 법률적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행위 당사자인 노동자의 주관적 위험성 판단이 사법기관에 의해 전혀 다른 판단을 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 실제 회사가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조간부를 업무방해로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가 있다. 집단이 아닌 개별 노동자는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항상 고용이 불안한 상태인 비정규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위험작업에 노출되기 쉬운 반면 일정 부분 회사 손해를 예정하는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둘째, 사업주는 작업중지권의 당연한 행사주체로 인정되는 반면 ‘노동자대표’에게는 작업중지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단체협약으로 노조간부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에게 작업을 중지할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교섭 자치에 의해 노동자 안전이 보장되는 사업장은 그다지 많지 않다. 노동자대표·산업안전보건위원·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에게 작업중지를 실시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해당 규정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셋째,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은 자칫 건설업·제조업 등에서의 재래형 안전사고를 예정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안전’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근래 증가하고 있는 감정노동자 안전 문제 등 다양한 노동형태와 그에 수반하는 재해를 두루 포섭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지난해 1월에는 한 이동통신사 해지담당부서 현장실습생이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자살에 이르는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이는 다양한 업종에서 작업중지권이 기능하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작업중지권 관련 규정들은 현행법 한계와 비판 지점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전부개정안 핵심 내용은 노동자의 작업중지와 대피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사용자가 대피한 노동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할 경우 형사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은 작업중지권 행사 주체에 대해 각 항으로 규정하던 것을 각 조문으로 분리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행사 주체를 명확히 분리함에 따라 마치 적극적 작업중지권은 사업주에게 국한되는 권리고, 소극적 대피 권한만이 노동자에게 부여될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한편 중대재해 발생시 사업주와 노동부 역할을 명확히 하고, 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 근거·요건·절차를 구체화했다는 점은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동자를 보호받는 객체로 규정했을 뿐 재해예방 주체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사업주와 노동부의 의무와 권한 사이에서 노동자대표·산업안전보건위원·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 노동자 참여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일터 안전을 지키는 데 노동자를 주체로 두지 않는 개정안은 장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재해예방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현행 법률의 한계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

노동자에게 보다 적극적인 권한 부여를 꺼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기업 손해와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업 이윤과 노동자 생명은 이익형량을 통해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설령 열 번의 작업중지권 행사 중 아홉 번은 법이 요구하는 ‘합리적 근거’를 결여한 경우라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재해예방 목적이 달성됐다면 결코 그 아홉 번의 작업중지가 헛되거나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작업중지권 관련 전부개정안 조항을 전향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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