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정책에는 당연히 공감하죠. 그런데 사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지 않으면서 실적만 압박하는 건 문제가 큽니다."

지진표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상근정책위원은 12일 <매일노동뉴스> 통화에서 일자리안정자금에 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지 정책위원은 "최저임금 1만원에 동의하고 일자리안정자금 조기 정착도 꼭 해야 하지만, 사업을 맡고 있는 직원들은 죽을 지경"이라며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속대책으로 내놓은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산하기관 노동자들이 시쳇말로 골병이 들고 있다.

기존 업무에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접수 업무에 실적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업무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영세업체 고민을 덜어 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정책이 과도한 실적경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인력·예산 안 주고 목표치 달성하라고?=정부가 일자리안정자금 조기 정착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업수행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해 국민연금공단·건강보험공단·노동부 고용센터·지방자치단체 주민센터가 홍보와 접수를 맡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국세청 세무서 직원들까지 홍보·접수에 동원됐다.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8만573명에 그치면서 초기 신청률이 저조하자 총동원령이 내려진 것이다.

총동원령을 내린 결과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이 2월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28일 하루에만 10만187명이 몰렸다. 이렇게 해서 이달 9일 현재 일자리안정자금 신청자는 112만2천710명이다. 정부가 올해 일자리안정자금 지원대상으로 잡은 236만명4천명의 절반 가까이(47.5%)에 이르는 실적을 거둔 것이다.

올해 1월 3%에 불과했던 신청률이 한 달 만에 10배 이상 급증한 이유는 위로부터 닦달이 거셌기 때문이다. 기관별로 할당 실적을 주고 매일 점검했다.

조창호 국민건강보험노조 정책기획실장은 "건강보험공단은 국민연금공단과 경쟁을 시키고, 근로복지공단은 고용센터와 경쟁을 시키는 식이었다"며 "우리가 국민연금공단보다 조직이 크고 직원이 많으니까 그 수만큼 더 많은 신청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데 모든 기관 직원들이 일자리안정자금 신청만 받은 게 아니다. 기존에 하던 업무는 그대로 진행했다. 이중 삼중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진표 정책위원은 "그나마 사업수행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인력과 예산을 지원받고 있지만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은 인력·예산지원 없이 각 기관 예산에서 목적 외 사용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사업수행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사정이 좋을까. 홍보·접수뿐만이 아니라 심사·지급에 사후관리까지 맡아야 하기에 인력·예산이 턱없이 모자란다. 공단은 올해 일자리안정자금 사업 전담인력으로 853명을 채용했는데, 정규직은 150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703명은 단기계약직이다. 윤상술 근로복지공단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저소득층 최저임금 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긴 한데,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일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업 추진 로드맵 만들어야"=사회보험업무를 하는 3개 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근로복지공단) 소속 5개 노조로 구성된 전국사회보장기관노조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인력충원과 예산반영, 부가업무에 따른 업무경감과 업무개선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민 삶의 질 향상 차원에서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정책 취지에 동의하지만, 목적과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맥락 없는 업무가중과 실적압박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부는 정책 신뢰 유지를 위해 현장 의견에 귀 기울이고, 땜질 처방이 아닌 안정적 사업 추진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일자리안정자금 정책이 관료적 전달체계로 인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며 "6·13 지방선거도 있고 정치적 압력도 가해지니까 조급할 수 있지만 정부가 윽박질러서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자리안정자금 주무부처인 노동부 관계자는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며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앞으로는 업무과중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