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 취지나 목적은 환영할 만한데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28년 만에 대대적인 수술을 앞두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평가는 한 줄로 요약된다. ‘일하는 사람 보호’라는 목적지를 제대로 찍고도 산업안전보건 제도가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이다.

15일 오후 양대 노총과 반올림·민변 노동위원회를 비롯한 8개 노동·안전보건단체는 서울 중구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제대로 바꾸자' 공동토론회를 개최했다. 정부가 지난달 9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처음으로 노동계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은 “보호범위를 확대하고 사업주 책임과 처벌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진전된 안”이라면서도 “세부적인 내용은 부실하거나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말뿐인 ‘일하는 사람 보호’=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1조(목적)다. '근로자' 대신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목이다. 고용노동부는 “법의 보호대상을 모든 일하는 사람으로 획기적으로 넓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법의 적용대상을 규정하는 2조(정의)에서 ‘근로자’ 조항은 손대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토론회 발제를 한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나름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했음에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 규정은 법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법 개정 취지가 무색하다”고 우려했다. 최은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은 “법의 정의 규정에 따라 법률 보호대상이 명확해진다”며 “정의 규정 개정 없이 법의 목적만 개정하는 것은 모래 위에 탑을 쌓고 쓰러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특수고용 노동자·배달종사자 등으로 보호대상을 확대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규정을 차용하고 있다”며 “같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레미콘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을 받는데 굴삭기·화물·덤프 노동자는 제외되는 게 타당하냐”고 되물었다.

◇보호대상을 넘어 권리주체로=김재광 소장은 “산재를 줄이는 관건은 ‘일하는 사람’의 참여와 권리 보장인데 전부개정안에서는 이러한 패러다임이 녹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중지권이 대표적이다. 전부개정안에 따르면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가 중지한 후 대피할 수 있고, 사업주가 불이익 처우를 하면 형사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임재범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산업안전국장은 "어디까지가 급박한 위험인지, 노동자가 자유롭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며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안전을 통제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 실행요건을 완화하고 주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보호조치 미흡 = 김재광 소장은 “개정안이 진정한 전부개정안이 되려면 정신건강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며 “고객응대뿐만 아니라 직무스트레스 일터 괴롭힘 같은 내용을 담자”고 제안했다. 천지선 민변 노동위원회 산재팀장도 “정신건강 관련 조항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벌칙조항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부는 올해 상반기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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