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1일 (재)공공상생연대기금 노사 관계자와 기금 출연단위별 대표자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자료사진
귀족노조, 배부른 노조, 기득권 노조. 대기업 정규직노조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보수진영과 언론은 "정규직노조 이기주의" "제 밥그릇 챙기기" 식의 비판을 녹음기 틀듯 쏟아 낸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정당하게 행사하는데도 그런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저성장 기조에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한데 최근 노동계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머니를 털어 비정규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별노조에 갇혀 내 사업장 조합원 이익향상에 주력했던 정규직노조가 노동시장 분절구조를 해소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미조직·비정규·청년 노동자에게도 손을 내밀고 있다. 노동계에 확산하는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연대활동, 분명 눈에 띄는 변화다.

“우분투(Ubuntu),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사업장을 뛰어넘는 사회연대활동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노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18일 노동계에 따르면 사무금융노조는 지난달 대의원대회에서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무금융노조 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의했다. 양극화 해소 특위는 사회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고 사업장 비정규 노동자는 물론 사업장 밖 미조직·비정규·청년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실천한다. 일명 ‘우분투(Ubuntu), 함께 달리기’ 프로젝트다. 우분투는 아프리카 코사족 말로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안중언 노조 정책국장은 “2018년 시대적 요구는 불평등·양극화 해소”라며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2020년까지 기금을 조성하고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창출 목표를 산별교섭에서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인센티브를 반납하며 비정규직 처우개선 지원과 청년일자리·취업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는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지침을 폐기하자 인센티브를 반납해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을 설립했다. 2016년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지급된 인센티브는 1천600억원으로, 현재 150억원가량이 모였다. 재단은 대국민 공모전을 열어 청년·비정규직·여성노동자 일자리 창출 아이디어를 모집해 사업으로 추진한다.

한국노총이 지난해 10월부터 모금하기 시작한 비정규연대기금에는 6억원이 모였다. 한국노총은 “정규직·비정규직 간 신분 차이를 넘어 단결과 연대 정신으로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며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존중 사회 건설에 나선다”고 밝혔다.

“전체 노동자 이익 대변, 강령 아닌 실천으로 옮겨야”

실질적인 임금격차 해소 움직임도 관심을 끈다. 금속노조는 사상 처음으로 제조업 노동자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산업별 임금체계를 제안했다. 대공장 노동자 임금인상 폭을 줄이고 영세공장 노동자들의 인상 폭을 늘리는 방식이다.

노조는 완성차 대공장 노동자와 나머지 조합원의 임금인상 교섭을 이원화한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으로 구성된 1군에는 기본급 5.3% 인상을, 나머지 2군 사업장에는 7.4% 인상을 추진한다. 노조는 올해 교섭에서 1군 사업장에 △1군과 2군 임금인상률 차이 2.1%를 원청사가 부담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 근절 △최초계약 납품단가 보장을 요구한다.

금융권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주목된다. 금융노조는 주 4일제(주 32시간제) 도입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직 내부 논의가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IT기술 개발에 따른 구조조정 위험까지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노조 강령에 보면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노사관계 결과를 보면 노동자 간 격차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가 연대의 날개를 펴지도 못한 상황에서 노조운동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로 보이면서 사회적 비판을 받았다”며 “노조운동이 제대로 살아나려면 연대운동에 나서야 하고, 이것은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 사회 변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도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지금 노동계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적 대화에서 임금격차나 비정규직 정규직화·일자리 창출 같은 의제를 논의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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