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영 기자
캄보디아에서 의류공장을 운영 중인 가원어패럴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했다. 회사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부서를 이동시키며 연장근무를 시켰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자 588명을 해고했다.

의류업체 광림 텍스웰 비나(KL Texwell Vina Co.,Ltd.) 경영진은 베트남 최대 명절인 뗏(Tet·새해) 연휴를 앞둔 지난달 8일 노동자 1천900여명의 임금 6억6천만원과 사회보험료 8억4천만원을 체불한 채 야반도주했다. 뗏 연휴 전 임금지급을 약속했던 회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임금체불·장시간 노동·부당해고·노조탄압·불법파견을 비롯한 한국 기업의 불법·부당행위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많은 수의 한국 기업이 저임금을 쫓아간 그곳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인권과 노동권 침해를 예방하고 구제 실효성을 확보해야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국내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NCP)는 유명무실하다. 해외 노동단체 활동가들은 “한국NCP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노동자들은 자신이 당한 부당한 사례를 한국NCP에 제소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NCP, 2000년 설립 뒤 이의제기사건 31개 불과

국제노총(ITUC)과 양대 노총,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가 29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 및 노동권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해외 노동단체 활동가들은 자국에서 벌어지는 한국 기업의 불법·부당행위를 증언하고 한국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조안나 코로나시온 필리핀 센트로 조직활동가는 “한국의 한 에너지 관련 기업은 불법파견 판정과 정규직 전환 명령을 받았음에도 20명만 직접고용했다”며 “파견업체 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으로 노동자 180명을 해고했다”고 비판했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 양말 공장은 강제로 초과근무를 시키고도 수당을 주지 않았다. 제대로 된 임금은 물론 사회보장급여도 지급하지 않았다. 유급휴가는 당연히 없었다. 노동자들은 이달 초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교섭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76명 해고였다. 회사는 앞으로도 노동자들을 해고하겠다는 입장이다.

해외 노동단체 활동가들은 “한국NCP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한국 정부가 나서 해외에서 벌어지는 노사분쟁 상황을 중재하고 해외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NCP는 미국과 일본의 NCP와 더불어 최악의 NCP로 평가된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NCP를 통해 고용관계나 노사문제를 조사하고 해결하게 돼 있지만 한국NCP 현주소는 그렇지 않다. 한국NCP가 설립된 2000년부터 접수된 이의제기사건은 31건에 불과하다. 이 중 한국NCP가 권고한 건수는 고작 2건뿐이다. 코로나시온은 활동가는 “한국NCP가 해외노동자들의 노동권 해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기구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NCP 역할 지지" 선언했지만

한국NCP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NCP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설치된 데다 대한상사중재원이 사업과 활동을 수탁하고 있다. 전문성과 실무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정상들은 “서로 연결된 세계를 만들자(Shaping an interconnected world)”는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G20 지도자들은 선언문에서 “사회적 대화와 공정하고 괜찮은 임금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지구 공급사슬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정상들은 공급사슬에서 일어나는 분쟁 해결과 관련해 “NCP 역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한국NCP의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모니나 웡 국제노총 인권·노동기본권 담당자는 “한국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유엔의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을 준수할 만한 정책적 체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며 “한국 정부와 해외공관들이 해외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신영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NCP는 해외노동자들이 한국 기업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구제절차”라며 “NCP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독립성과 공정성·책임성·효과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민간에 위탁된 한국NCP 운영을 정부가 맡고, 정부와 노동계·산업계·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위원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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