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비닐을 깔고 침낭을 늘어놓으니 저기 어두운 밤 누울 자리다. 휴업 1년여, 할 일이 없으니 못 할 일도 없었다. 천장 없는 노상이었지만 마른자리였고, 낮이면 봄볕 아래 따뜻했다. 보송보송 잘 마른 침낭에 들어 잠들기 전, 집에 전화 한 통을 잊지 않았다. 말이 길지는 않았다. 낮이면 효자로 따라 걸었다. 청와대 100미터 앞에 주저앉아 버티기를 이어 갔다. 마이크 잡아 속마음을 전하는 데 말이 길지 않았다. 배 짓는 일 18년, 아이들 키우느라 힘든 줄을 몰랐다. 겨우 빚내 새집을 샀다. 중도금 꾸역꾸역 메꾸고 들어가 이제 막 발 좀 뻗어 보려는데 이렇게 됐다고 그중 말 많은 사람이 읊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의견 표현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큰 변화 같다고 거기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말했다. 정치하는 사람들 선거철 굳은 약속 안 지키는 건 변함없다고, 왜 항상 노동자들만 잘려 나가야 하느냐고 길에 앉은 사람들이 외쳤다. 조선의 궁궐 담벼락 따라 다시 행진했다. 하루 멀다고 솟은 온갖 천막농성장을 지나 번데기 모양 이부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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