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가 유행시킨 말 중에 “평생 직장에서 평생 직업으로”란 문구가 있다. 경제와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하고, 노동자들은 한 직장에서 고용을 유지하기를 기대하는 대신 개인의 경쟁력을 키워 여러 직장에 잇달아 고용될 가능성을 높이라는 뜻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구호가 생경하게 들렸지만, 노동유연화 정책을 실시한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도리어 ‘평생 직장’이란 개념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계청 조사 결과로 봐도 우리 사회 임금노동자 평균 근속연수는 5.9년, 비정규직 평균 근속연수는 2.4년에 불과하다. 한 직장 근속기간만 짧아진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비전속적 노동자 규모도 증가했다. 아직 이를 뒷받침할 만한 통계는 없지만, 단시간 노동자와 호출노동자 급증과 비전속적 특수형태 노동 증가가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비전속적’ 노동자 증가는 한 사업주에게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노무제공자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주된 직장에서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함으로 인해, 또는 산업 전반에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되다 보니 전속적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 복수 사업주에게 노동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증가하는 것이 더 큰 요인이다.

사업주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역으로 통제력 증가로 귀결된다. 노동시장에 이런 노동자들이 넘치다 보니 일감을 둘러싼 노동자 간 경쟁을 통해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고, 플랫폼과 같이 디지털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력중개기구를 통해 노동력의 안정적 수급을 확보할 수 있다. 바야흐로 적기생산(just-in-time production)을 뛰어넘어 적기노동력(just-in-time labour)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자를 직접·계속적으로 고용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무급 노동시간의 증가와 노동법·사회보장법적 보호에서의 배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이런 노무제공자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와 실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노동법·사회보장법은 이런 현실과 제도 변화에 여전히 뒤처져 있다. 우리 노동관계법 주체는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개념, 즉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에 한정돼 있다. 최근 28년 만에 입법예고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최근 변화된 노동력 사용실태에 맞게 법의 보호 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넓힌다”는 개정취지는 1조 목적 조항에서 선언되고 있을 뿐, 실제 법 적용 대상이 되는 ‘근로자’는 여전히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돼 있다.

게다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 규정이 신설됐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개념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념을 그대로 가져왔다. 2007년 개정된 산재보험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등을 요건으로 하면서 구체적으로는 시행령으로 정하는 업종 종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전속적·상시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만을 보호 대상으로 보는 이런 입법은 특수형태 노동자의 현실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단시간 노동자처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지만 비전속적·간헐적으로 노동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욱이 산재보험법에 전속성·상시성을 요건으로 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개념이 도입되자, 이것이 역으로 다른 노동입법·노동행정의 보호범위를 축소하는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했다. 비전속적 대리기사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대리운전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지난해 고용노동부 처분이 그러한 사례다. 이제 산업안전보건법에까지 이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개념이 도입될 경우 그 효과는 노동관계법의 보호범위를 더욱 좁히는 추세를 강화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그 개정 취지에 걸맞게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개념에서 독립된 ‘일하는 사람’ 개념을 현실 변화에 맞게 새로이 정립해야만 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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