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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電線) 위 참새와 전선(戰線) 위 노동자

기사승인 2018.04.0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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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08년 4월 공중파 뉴스에서 기자는 상기된 목소리로 전했다. “76만볼트! 4미터 거리에서도 감전될 수 있는 고압이지만 익숙한 솜씨로 부품을 교체합니다. (중략) 고압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기술, 이른바 활선공법입니다. (중략) 작업원의 몸을 송전선과 같은 고압볼트로 만드는 기술이 핵심인데 전선 위의 참새가 감전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2001년부터 적용해 오던 활선공법을 90미터 높이 초고압 송전선에서 동양 최초로 실용화했음을 알리는 보도는 한국전력이 2천800억여원의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코멘트로 마감했다. 노동자의 인터뷰는 “지지직 소리만 들릴 뿐 신체적으로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작업복의 연결 부위가 떨어지지 않도록…”에서 끊어졌다.

활선공법은 애초부터 위험을 담보로 한 것이었으며 그토록 강조했던 비용절감은 하청업체에는 매출감소로 돌아왔다. 감수한 적절한 절연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할 시간과 적정한 인력을 갖추지 못한 하청업체의 안전위협은 높아지고 사고로 이어졌다. 위험의 악순환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산재가 발생하면 입찰 참가가 제한되는 하청업체와 사업지역에서 무사고를 달성하면 성과급을 받게 되는 원청 직원의 이해관계는 산재은폐로 연결됐고 전기원 재해는 죽음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았다.

전선 위 참새만큼 안전하다던 전기원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무너졌다. 2011년 한 국회 의원실에서는 2008년부터 2011년 6월까지 한전 발주 배전공사 현장에서 5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감전으로 인한 절단·추락을 포함해 1천402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2016년 6월 한전에서 “지난 25년간 시행된 직접 활선공법을 원칙적으로 폐지한다”고 밝힌 이틀 후 바로 그 활선공법으로 전선교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감전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아직도 현장에서 활선 공법은 지속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삶과 죽음의 전선(戰線) 위에 있다.

사고성재해만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 근골격계질환 산재 업무관련성 평가를 위해 외래를 찾아온 전기원 노동자의 어깨 힘줄은 닳고 닳아 있었다. 25~30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장비를 허리에 착용하고 전신주에 올라 작업을 한다. 중량물의 장비를 줄에 달고 끌어올리기도 하며, 고압 전기가 흐르는 활선 상태에서 감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전선과의 거리를 90센티미터 이상 두고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자세로 어깨를 들어 올리거나 반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광주근로자건강센터에서 지역 전기원 204명의 근골격계 진찰을 시행한 결과 전체 대상 중 30.4%가 어깨질환이 있었으며 22.1%는 요추염좌, 19.6%는 내외상과염을 앓고 있었다. 62.7%가 근골격계질환으로 인해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전기원 노동자의 백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문헌고찰 내용을 종합하면 소아 백혈병을 제외한 성인 백혈병의 경우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백혈병의 연관성은 아직까지 그 결과가 일관성이 없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학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통해서 승인됐다. “엄밀히 보면 업무관련성이 낮은 게 아니라 의학적 인과성이 밝혀진 게 없는 상황”이며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개연성·유발성·유병률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백혈병과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라는 입장 또한 전향적이며 새로운 변화다.

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올라왔고, 31년 만에 헌법 개정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진보정당과 대통령 개헌안에는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또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환영할 일이다. 이러한 헌법적 가치 아래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작업중지권이 노동자들에게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권한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활선작업을 바꾸도록 요구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위험을 눈앞에 두고도 임금과 고용·손해배상소송 등을 앞세워 감내하기를 강요한다면 노동자들은 또 다른 전선에 서야 할지 모른다.

애초부터 참새가 아닌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었다. 비용절감 기술이 아닌 노동자들의 위험을 예방하는 기술과 제도에서 동양 최초, 세계 최초가 되기를 기원한다.

류현철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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