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법은 올해 2월 고용노동부에 삼성전자 온양공장이 제출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노동부와 삼성전자는 보고서가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거부했지만 법원은 “해당 작업장 전·현직 노동자 안전 보장, 인근 지역주민 생명·신체 건강을 위해서도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판결 뒤 노동부는 상고를 포기하고 지침까지 바꿔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3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삼성디스플레이 탕정공장 측정보고서를 공개하려던 노동부를 막아섰다. 탕정공장에서 일하다 림프암에 걸린 노동자는 또 눈이 가려진 채 어려운 산업재해 소송을 해야 한다. 기업 영업비밀 보호와 알권리 조장 사이 간극이 크다.

삼성 이권부터 챙기는 권익위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올해 2월 대전고법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고, 산재노동자나 유족,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 나아가 사업장 인근 지역주민의 안전보건권을 위해 필요한 정보이므로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고용노동부는 정보공개처리지침을 변경하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는 10년 만에 상식과 피해자의 존엄을 조금이나마 되찾는 결정이었다. 앞으로는 측정보고서를 노동부를 통해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런 기대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의해 또다시 좌절됐다.

권익위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노동부에 보관돼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측정보고서를 공개해 달라는 재해노동자와 대리인 청구를 위원장 직권으로 집행정지하고 삼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설령 수개월 뒤에 열릴 예정인 행정심판 본안심리에서 정보공개 결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수개월 동안 재해당사자는 해당 정보를 보지 못해 적절한 시기에 산재입증을 하지 못하게 된다. 법과 상식을 넘는 부당한 결정이다. ‘법보다 삼성이 위에 있다’는 것을 권익위 스스로가 보여 준 셈이다. 산재를 입증할 자료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재해노동자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법원 판결마저 무시한 채 삼성을 옹호하는 권익위 행정심판위를 규탄한다. 무엇보다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이번 집행정지 결정은 행정심판법 30조3항에 따라 즉각 취소돼야 한다.

행정심판위 3명의 상임위원 중 1명이 전직 삼성전자 임원이라는 점은 아연실색할 만하다. 행정심판위 주장처럼 해당 위원이 이번 집행정지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심판위 태도는 위법 부당하다. 행정심판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는 3자(정보공개청구 당사자)가 회의참여요청을 하자 당사자 자격이 없다며 거부하더니 이렇게 비공개로 열린 회의에 해당 상임위원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사후에 주장한다. 어불성설이다. 회의는 비공개하고 결정은 삼성 편을 드는 권익위 행정심판위는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부당한 집행정지 결정을 취소하고 해당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노동자 정보청구권 법으로 보장하자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이번 사태의 원인은 하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유해·독성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정보 접근권리가 제대로 보장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민감한 영업비밀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알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유일한 법령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작업장의 유해하고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노동자의 정보 접근권이나 요청권을 보장하는 조항을 찾기 힘들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들은 업무관련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관련 증거나 자료가 모두 다 회사 안에 있다. 회사는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에게는 이를 살펴볼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수년에 걸쳐 소송을 해야 했다. 결국 법원에서 삼성디스플레이에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결정이 나왔지만 직업병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 결과를 알 수 없게 됐다. 이들은 또다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작업장의 화학물질 정보를 무조건 차단해서는 안 된다. 몇 가지 보완장치를 한다면 노동자의 알권리와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사용목적을 노동자가 자신의 질환과 업무관련성 간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나, 한 사업장에 작업과 관련한 유소견자들이 다수 발견돼 이에 대한 조사를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 등으로 제한하면 된다. 또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는 장치까지 만든다면 노동자의 알권리도 보장하고 기업의 영업비밀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권익위, 노동자 생명·건강 보호 외면한 결정 철회해야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씨가 사망한 지 벌써 11년이 흘렀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직업병 피해자는 320명이고 사망자는 118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은 각종 암에 걸린 노동자의 직업병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과거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도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노동자가 직업병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작업에 사용된 화학물질 종류와 노출정도 같은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측정보고서에는 이러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대전고법은 올해 2월 노동부에 삼성 반도체공장 측정보고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노동부 또한 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기관인 권익위가 삼성디스플레이 탕정사업장 측정보고서 공개를 막아 달라는 삼성디스플레이 손을 들어주는 반인권적인 결정을 내렸다. 권익위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노동자 생명과 건강 보호보다 삼성의 이익을 위해 행정심판위원장 직권으로 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어이없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인권을 저버린 권익위는 이제 삼성권익위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권익을 무시하는 권익위는 존재 이유가 없다. 권익위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삼성디스플레이 측정보고서 공개정지 결정을 즉각 취소하고,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줘야 한다.


권익위, 법원 판결문은 읽어 봤나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작업환경측정은 노동자의 직업병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측정 이후에 노동자에게 결과를 알려야 하고, 근로자 대표가 요구하면 설명회를 개최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영업비밀’이 돼 버렸다. 고3 졸업 직후 삼성디스플레이 탕정현장에서 3년 일하다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한 노동자의 산재신청에 글로벌 기업 삼성이 영업비밀을 주장한 것이다. 게다가 사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삼성의 요청을 수용한 국민권익위원회는 대전고법 판결문을 읽어나 봤는지 의심스럽다. 황유미씨 사망 이후 11년 동안 삼성에서는 320명의 직업병 피해제보가 있었고, 11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산재 소송에서 법원의 답변·자료제출 요구에 삼성은 80% 넘게 거부하거나 혹은 일부 제출했다. 심지어 역학조사에 산재신청 당사자·대리인 참여를 보장하는 요양업무 처리규정도 무시하고 배 째라 식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삼성은 스스로가 요구해서 구성된 삼성직업병 관련 조정위원회 권고를 거부하고 2013년 삼성불산 누출사고 당시 산재와 불산가스 공장외부 유출 사실을 은폐했다. 2015년 38명 사망자로 전국을 공포로 뒤흔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의료진 확진과 병원내부 감염상황을 감췄고 2016년 휴대전화 외주하청업체에서는 메탄올 중독과 실명 사건이 일어났다. 노동자·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속적으로 위협해 온 것이다. 삼성의 측정보고서 공개는 산재신청 노동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노동자·시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그 위협을 숨기는 삼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정보공개 집행정지 결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은 보호돼야 한다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법원의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 판결을 이유로, 다른 공장의 측정보고서까지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측정보고서 내용 중 측정위치도 등 일부 정보는 기업기밀에 해당될 수 있다. 특정 공장에 대한 법원 판결을 생산기술·공정정보가 다른 공장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근로자의 질병에 대해 업무연관성을 규명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산재입증과 관련 없는 자료는 정보공개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해야 한다. 또한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은 적극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럼에도 국회에는 이미 측정보고서 외에도 유해위험 방지계획서·공정안전보고서 등 기업의 각종 안전보건자료를 ‘누구든지’ 공개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유해위험 방지계획서와 공정안전보고서에는 생산공정 흐름도, 기계·설비 목록과 배치도, 건축물 평면도, 공정설계·운전조건 같은 정보가 포함돼 있다. 해당 자료 유출시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 핵심기술임을 감안해야 한다. 각종 안전보건자료의 공개 여부 판단시 국가안보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 제품의 국내외 시장점유율, 국가 간 기술격차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