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기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사·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4월 임시국회 처리 가능성도 열려 있다. 환노위에 계류돼 있는 산입범위 관련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5건이다. 최저임금에 월할 정기상여금을 포함하거나 교통비·식대를 넣는 내용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반가운 상황이 아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넓어지면 실제 인상률보다 적은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이 지난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제점과 피해사례 집담회’에서 "국회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처리하면 노동조건이 심각하게 후퇴된다"고 하소연했다. 항공기·지하철·병원 청소노동자와 학교비정규 노동자·이주노동자가 이 같은 사례를 증언했다. 이날 집담회는 김종훈 민중당 의원과 민주노총이 주최했다.

“파업·단식으로 얻은 임금 빼앗지 말라”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국회가 노동자들이 힘들게 얻은 임금인상 성과를 빼앗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전국적인 파업과 집단 단식투쟁까지 하며 수당 인상 합의를 이끌어 냈다”며 “어렵게 얻은 임금인상 성과를 국회가 다시 빼앗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동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식대·교통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면 월평균 19만원(시급 909원) 정도 감소한다”며 “연 단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명절휴가비까지 포함하면 월 15만~18만원(시급 640~800원)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배동산 국장은 “이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받는 학교비정규직이 14만명이나 된다”며 “학교비정규직뿐 아니라 전체 비정규 노동자의 저임금 해소를 위해서라도 산입범위를 넓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청소노동자 상황도 비슷했다. 경기도 고양 KTX 차량기지 청소·경비 용역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노조를 설립하고 올해 2월 임금·단체교섭을 통해 처음으로 합의된 임금인상분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울상을 지었다. 이관호 민주여성노조 철도지부 고양차량기지청사지회장은 “상여금이 최저임금에 포함되면 우리가 임단협을 통해 받아 낸 상여금 13만3천원이 날아간다”며 “지난해 대비 올해 임금이 18만1천원 인상됐는데 여기서 13만3천원을 빼면 4만8천원밖에 오르지 않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주노동자 “숙식비용 이어 상여금까지 반납?”

이주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주노조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2월 공표한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으로 이주노동자 임금이 되레 줄어들었다. 업무지침에 따르면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에게 숙소·식사를 제공하고 서면동의 절차를 거치면 임금에서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동의 절차라지만 사실상 강제서명이고 제공되는 거주지도 컨테이너 수준의 가건물”이라며 “사업주들이 지침을 임금을 깎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데, 상여금까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 이주노동자 임금이 더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사업주들이 올해 산입범위를 개편하면 내년에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국적별·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할 것”이라며 “산입범위 확대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기업 최저임금 꼼수 면죄부 줘서야”

참석자들은 최저임금 개정안이 기업들의 최저임금 꼼수를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기내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케이오㈜ 사례에 주목했다. 케이오는 지난해 임금협상을 하면서 기존 기본급 대비 600% 지급하던 상여금을 300%로 줄였다. 나머지 300%는 기본급에 산입했다. 김정남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은 “사용자들이 현행법으로는 편법이자 꼼수라는 걸 알기 때문에 숨어서 최저임금을 회피하는 행태를 보인다”며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 그들에게 합법적 경로를 만들어 주게 된다”고 말했다.

김진숙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은 대형마트 사례를 언급했다. 김 위원은 "롯데마트가 올해 여름휴가 보상금 30만원을 모두 최저임금에 포함해 노동자 기본급이 결국 7천530원이 됐다"며 "신선수당 같은 수당도 기본급에 추가로 산입했다"고 설명했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 꼼수가 합법화된다”며 “개정안은 기업 최저임금 꼼수 면죄부”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민주노총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곽승용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은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최저임금 인상’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는데 산입범위 확대 논의에 민주노총이 너무 점잖게 대응하는 것 같다”며 “민주노총은 결사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곽승용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현행 최저임금법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산입범위가 확대돼 전제조건이 달라지면 최저임금도 1만원이 아닌 그 이상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백석근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투쟁순환버스를 운행해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훈 의원은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논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논의에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최저임금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의가 없는 한 국회는 최저임금 논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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