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조 인정을 받는 데 5년이 걸렸지만 조인식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17일 정오께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노사의 협력업체 노동자 직접고용 조인식 얘기다.

조인식은 비공개였다. 오후 2시께로 예정됐던 행사 시간도 갑작스럽게 2시간이나 앞당겨졌다. 언론에 노출될까 봐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을 비롯해 지회 관계자 4명이 먼저 도착했고, 곧바로 최우수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와 회사 관계자 4명이 경호팀 호위를 받으며 들어섰다.

“회사쪽이 먼저 합의 의사 밝혔다”

조인식은 빠르게 진행됐다. 노사 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노사 대표의 공식 발언도 없었다. 회사쪽에서 데려와 촬영을 맡은 담당자는 무덤덤한 표정의 참석자들에게 몇 차례 “웃으세요”라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다. 조인식 뒤 최우수 대표이사와 최평석 전무에게 합의 배경과 규모를 물었지만 “홍보팀과 이야기를 통일하기로 했다”거나 “홍보팀에 물어 보라”고 짧게 답했다. 커뮤니케이션팀(홍보팀) 관계자는 “(다른 작업을 해야 해) 나중에 이야기하겠다”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비공개 조인식을 노조 한 관계자는 “합의하고 나면 어마어마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며 “기자에게 답변하다 말이 삐끗(잘못) 나가면 곤란하니까 (회사에서) 공개를 꺼리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지회 관계자는 “처음으로 합의서를 쓰는 것이고 (아직 노사가) 신뢰형성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합의서에는 △회사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고용한다 △회사는 노조 및 이해당사자들과 빠른 시일 내에 직접고용 세부내용에 대한 협의를 개시한다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고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회 “합의 환영, 검찰수사 양보 없어”

지회에 따르면 이번 합의를 이끌어 낸 협상은 이달 13일 회사가 먼저 직접고용 의사를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최근 검찰의 삼성그룹 ‘노조파괴 의혹’ 수사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지회 관계자는 “삼성 문건에 윗선까지 개입된 정황까지 포함돼 있어서 이번에 이왕 터진 것을 인정하고 가겠다는 내부 결정을 했던 것으로 (여러) 루트를 통해 파악됐다”고 귀띔했다.

교섭은 13일부터 두 차례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지회는 16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내부 운영위원회를 통해 합의 내용과 관련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지회 관계자는 “직접고용 합의·노조 인정에 대한 논의가 무리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며 “다만 고 염호석 분회장의 유해를 찾는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 합의가 되지 않았고 향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직접고용 전환 규모와 시기·방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실무교섭과 본교섭에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지회 관계자는 “실무협의를 빠르면 이달, 늦어도 5월 안에는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이번주에 예정돼 있던 지회와 협력업체의 올해 임금·단체협상 일정은 철회됐다.

지회는 “삼성그룹이 80년간 이어 온 철옹성 같던 무노조 경영을 폐기했다”며 “이번 합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지회 관계자는 “합의를 했다고 해서 검찰의 삼성 ‘노조 와해공작’ 의혹 수사 과정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며 “이번 합의와 관련해 회사가 (검찰 수사와 관련한) 단 한 가지라도 요구한다면 우리는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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