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지난 10년간 2천994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숨졌다. 전체 과로사 규모는 한 해 평균 332명이다. 하루에 한 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숨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동관계법 어디에도 ‘과로’라는 단어가 없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관용어가 무색하다.

매일 벌어지는 과로사를 없애기 위해 노동관계법을 새로 제정하고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17일 오후 국회 도서관 4층 회의실에서 열린 ‘과로사 현장 증언 및 과로사·과로자살 근절 정부대책, 무엇이 필요한가’ 토론회에서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과 과로사OUT대책위원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신창현·이용득·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참가자들은 “노동자들의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막기 위해 국회와 고용노동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자들 한 달 170시간 연장근로 시달려"=교육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장민순씨가 장시간 노동에 괴로워하다 올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씨의 언니 향미씨는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에스티유니타스 사무실 앞에서 야근 근절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박준도 노동자의 미래 정책기획팀장은 “장씨는 에스티유니타스와 포괄적 노예계약을 체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씨와 에스티유니타스가 2015년과 2016년 맺은 포괄임금 근로계약에 대한 비판이다. 양측은 이를 통해 매달 연장근로를 69시간(주당 15.9시간)으로, 밤 10시 이후 야간근로를 29시간으로 정했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과로에 괴로워하는 노동자는 IT업계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버스·택시·항공지상조업·건설·병원에서 장시간 노동에 괴로워하는 노동자들의 사례가 소개됐다. 김성재 민주택시노조 정책국장은 “택시노동자의 1일 구속시간은 전체 평균 13.9시간이고 격일제가 많은 지방 택시노동자 구속시간은 무려 18.1시간”이라고 전했다.

구속시간은 회사에서 차량이 출고된 뒤 입고되기까지 소요된 시간을 뜻한다. 택시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장시간 노동을 견디는 것은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 때문이다. 노동계는 월급제 전환을 장시간 노동 근절의 첫 단계로 본다.

비행기 이착륙을 돕는 공항지상조업 노동자 사정도 다르지 않다. 제주공항이 노동자들에게 부여한 한 달 연장근로는 무려 170시간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병원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82.2분의 연장근로를 한다.

◇"67년 묵은 특례제도, 이제는 폐기할 때"=전문가들은 법 개정과 국가에 과로사 방지의무를 부여하는 별도의 법 제정을 대안으로 주문했다.

김인아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산업안전보건법 24조(보건조치)에 업무상 스트레스·과로사 등에 대한 예방을 별도 조항으로 신설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과로사 등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어 노동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가 과로사 방지를 위한 기본계획을 세워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도록 하고, 과로사나 심리적 부담으로 인한 자살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에 대한 지도·감독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인임 과로사예방센터 사무국장은 “서비스업이 거의 없었던 1961년 서비스업 위주로 도입된 노동시간 특례제도가 서비스업이 취업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오늘날까지 유지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며 “특례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자 노동자에게 공짜 노동까지 강요하는 대표적인 제도인 포괄임금제를 없애야 한다”며 “한국의 법정 노동시간단축이 실질적인 노동시간단축으로 이어지려면 일본처럼 과로사 발생 사업장 감독·명단공표·처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4년 '과로사 방지법'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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