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삼성공화국 직원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법에 나온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받고 살고 싶다."(위영일 초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결성한 것은 2013년 7월14일이다. 이후 두 명의 조합원이 "끝까지 노조를 지켜 달라"는 취지의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회는 이들을 가슴에 묻고, 지회간부 3명이 구속되는 고통 끝에 협력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위장도급 의혹

지회 설립 한 달 전인 2013년 6월18일 국회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을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을지로위원회)'와 민변 노동위원회·금속노조가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가 맺은 도급계약서를 공개했다. 도급계약서에는 종업원 교육·경영자료열람·경영컨설팅을 '갑'인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에 강요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위장도급 의혹이 제기되자 삼성은 협력업체에서 '삼성' 로고를 지우기 바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작업조끼에서 '삼성'을 지우고 협력업체 로고를 새겼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1천여명은 같은해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삼성전자서비스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근로감독을 한 노동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고 판정했다. 서울중앙지법도 지난해 1월 "적법도급"이라며 삼성전자서비스 손을 들어줬다.

2013년 노동부 고위관계자 지시로 결과가 바뀌었다는 근로감독관 녹취록이 공개됐다. 지난달 15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원청 관리자가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내용의 녹취록까지 나왔다. 노조와해 문건 수사로 코너에 몰린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고용 카드'를 꺼낸 배경이다. 불법파견 판결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삼성에 맞서 목숨 바쳐 지킨 '노동조합'

5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조합원 수십 명이 '표적감사'와 '협력업체 위장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삼성에서 노조를 선택한 대가는 혹독했다. 노조 설립 석 달 뒤인 2013년 10월31일 돌이 안 된 어린 딸을 남기고 천안두정센터 최종범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배고파서 못살겠다"며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선택했으니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의 유서를 썼다. 이듬해 5월17일에는 염호석 양산분회장이 "더 이상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 안치해 주십시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염 분회장 장례는 유족 동의를 구해 노동조합장으로 치르려 했으나 고인의 부친이 갑자기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이튿날 경찰은 염 분회장 주검이 안치돼 있던 서울의료원을 둘러싼 뒤 경력을 동원해 주검을 가져갔다. 이를 막는 과정에서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등 3명이 장례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가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이다.

한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염 분회장 사망 이후 한 달 보름여 만인 2014년 6월28일 협력업체에서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총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기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지회가 원했던 '완전 월급제'를 담지는 못했지만 노조활동 보장과 기본급 120만원 지급 같은 오래된 쟁점에서 합의를 이끌어 냈다. 노조 설립 350일 만에 손에 쥔 단체협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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