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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핵심기술로 둔갑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삼성 비밀주의에 산재 입증 가로막힌 피해자들

기사승인 2018.04.1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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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업계 쌍두마차 SK하이닉스 "노조사무실만 와도 보고서 볼 수 있어"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알권리가 삼성의 과도한 비밀주의에 또다시 가로막혔다. 일하다 질병을 얻은 산재 피해자들이 산재를 입증할 때 꼭 필요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국가핵심기술'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은 "공장 작업환경을 측정한 보고서가 느닷없이 국가핵심기술이 됐다"고 황당해했다.

국가핵심기술로 떠오른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1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반도체전문위원회는 지난 17일 "삼성 반도체 사업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30나노 이하급 D램, 낸드플래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공정 및 조립기술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26일 온양·기흥·화성·평택 등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됐는지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 뒤 두 차례 회의를 거쳐 내린 결론이다.

반도체전문위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포함된 단위 작업장소별 화학물질(상품명)과 측정순서·레이아웃·월 취급량 같은 정보에서 공정이나 조립기술을 유추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산자부 관계자는 "반도체전문위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보고서에 반도체 기술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들어 있어 마치 기술보고서와 같은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며 "외부에 공개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말했다.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기술보고서와 같은 수준이라는 주장은 올해 2월 대전고법 판결과 완전히 배치된다. 대전고법은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다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산재피해자 유족이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을 상대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 "보고서에 있는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삼성이 우려하는 온양공장의 공정 간 배열, 각 라인에 배치한 설비의 기종 및 보유대수, 생산능력, 반도체 후공정 자동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효과 정보, 제품 생산을 위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사용량·구성성분 정보까지 알려지게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종란 반올림 공인노무사는 "언제든 작업자들이 볼 수 있어야 하고, 6개월마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되는 문서가 갑자기 국가핵심기술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민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는 "다른 반도체 업체들은 유출될 기술이 없어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겠냐"고 반문했다.

실제 삼성과 함께 국내 반도체업계 쌍두마차인 SK하이닉스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작업장은 물론이고 노조사무실에도 비치해 놓는다. 주기적으로 측정업체들이 와서 설명회를 한다. SK하이닉스청주노조 관계자는 "1년에 두 번씩 하는 작업환경측정 기획단계부터 노조가 함께한다"며 "측정이 끝나면 측정업체가 설명회를 갖고 측정 결과를 책자로 나눠 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일 병에 걸린 하이닉스 직원이 산재를 신청하면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보고 싶다고 하면 노조사무실에만 와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영업비밀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산재 피해자들 알권리·건강권 어쩌나

산자부의 이번 결정은 기술적인 판단일 뿐이지만 결과적으로 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삼성에게는 칼자루를 쥐어 준 셈이 됐다. 삼성은 산자부 판정 결과를 법원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근거자료로 제출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은 화성·기흥·평택·온양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공개되면 "핵심기술·공정노하우 등 영업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며 법원에 행정소송과 정보공개 집행정지 가처분을, 중앙행정심판위에는 행정심판과 정보공개 집행정지를 신청한 상태다.

산자부 결정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방침을 세운 노동부 입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산재 피해자들의 소송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올해 3월 현재 삼성전자 반도체·LCD 사업장에서 80명이 사망했다.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 9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 중 24명만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10명은 행정소송 중이다.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 노동자들의 산재입증에 반드시 필요한 자료인데도 삼성과 산자부에 의해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며 "산재 노동자들에게 산재 입증책임을 부여해 놓고 이런 식으로 입증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산재 피해자들조차 이 자료를 못 보게 된다면 이들의 건강권과 알권리는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며 "만에 하나 정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면 산재 피해자들에게 대체정보라도 알려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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