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제너럴 모터스(GM)가 설정한 부도신청 데드라인 4월20일을 앞두고 한국지엠을 둘러싼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지엠은 정말 부도신청까지 갈까? 도대체 지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엠의 의도를 살펴보고 한국 정부와 노동조합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본다.

우선 지엠 의도를 간파하려면 지엠에게 한국법인이 어떤 의미인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지엠에게 한국지엠은 “요긴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는 않은” 계열사다.

이미 몇 차례 칼럼에서 썼듯이 지엠은 “생산은 고수익 대형자동차와 미래 전기·자율주행차에 집중하고, 영업은 북미와 중국 시장에 집중한다”는 중기 전략을 세웠다. 지엠 본사는 이 전략을 위해 2014~2020년을 글로벌 구조조정 기간으로 설정했다. 중소형차를 생산해 절반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는 한국지엠은 생산 측면에서나, 시장 측면에서나 핵심 전략에서 배제된 상태다. 중소형차를 100만대 생산하는 수출공장은 지엠에게는 필요가 크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지엠이 지엠에게 아직 요긴한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지엠이 글로벌 구조조정 와중에 너무 많은 공장을 폐쇄하고 매각한 탓이다. 지엠은 2016년에 중소형차 생산과 개발이 가능했던 유럽 오펠과 호주 홀덴을 버렸다. 소형차를 만들던 인도 공장도 일부를 폐쇄했다. 그리고 미국·멕시코·캐나다 공장들은 대형차에 집중하도록 개편했다.

대형차와 전기차에 집중한다고 해도 지엠이 종합자동차회사인 이상 중소형차를 아예 만들지 않을 수는 없는데, 구조조정으로 인해 생산과 개발능력이 너무 떨어져 버렸다. 지엠에게 한국지엠은 글로벌 구조조정 틈새를 메워 주는 꽤 요긴한 중소형차 생산기지다.

그렇다면 지엠은 왜 법정관리라는 배수진까지 치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걸까. 사실 지엠에게 법정관리는 고스톱의 ‘꽃놀이패’와 같다. 만약 법정관리까지 가지 않고 정부와 노조가 더 희생하면 지엠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법정관리를 간다 하더라도 그 기간에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필요한 생산을 지속할 수 있다. 법정관리를 가든지 말든지 결국 계획된 생산이 종료되면 법인을 정리하며 자산을 현금화해 가져갈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방식 차이만 있을 뿐 지엠은 글로벌 구조조정 비용을 한국에서 공짜로 얻는다.

국민과 노동자들에게는 정말 억울하고 복장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현재는' 한국 정부와 노조 모두 지엠에게서 떠날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다.

일부에서는 2010년 체결된 비용분담협정서를 근거로 한국지엠이 당장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체결된 협정서는 한국지엠이 가진다는 소유권 대상도 모호하고, 더군다나 한국지엠은 그 당시와 달리 2011년 이후 자신의 플랫폼과 기술주도권을 모두 잃어버렸다. 협정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 지엠 철수 뒤 남겨진 한국지엠에는 신차도 판매처도 없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영기업화나 국민기업화도 현재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한국지엠에 필요한 것은 누가 대주주가 되느냐가 아니라 “무슨 차를 어디다 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노조에 필요한 것은 지엠 없는 한국지엠을 계획하는 ‘이행기’다. 정부는 금융적 접근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자동차산업을 계획해야 하고,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두고 갈등하는 조합원들을 설득해 부평·군산·창원·정비·사무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포함하는 일자리 나누기를 계획해야 한다. 생산물량 변화에도 고용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노동시간을 크게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고용연대 전략을 짜야 한다. 이것이 한국지엠 미래에 정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부와 노조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줄 수는 있다.

정부와 노조가 시간을 두고 대안을 찾으면 의외로 여러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전기차 기업들이 기존 자동차 기업들의 공장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사례가 많은데, 한국지엠도 전기차 생산기업이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전문업체 테슬라(Tesla)는 2010년 4월 지엠이 가동을 중단한 프리몬트 공장을 인수해 전기차 생산공장으로 재가동했다. 중국 전기차업체인 에스에프 자동차(SF Motors)는 미국 군용차 전문업체인 에이엠 제너럴(AM General)의 조립공장을 인수해 전기차 공장으로 바꿨다. 2016년에 폐쇄된 지엠 호주 엘리자베스 공장도 여러 전기차 기업들이 인수를 추진했다. 특히 영국의 한 억만장자가 호주 철강회사, 인도 전기차 부품사, 그리고 엘리자베스 공장을 인수해 전기차 기업을 새로 만들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중소형차를 위탁생산하면서 공장가동률을 높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위탁생산으로 공장이 살아난 예는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대표적이다. 2010년 이후 생산량 급감으로 위기에 처한 르노삼성은 2014년 이후 일본 닛산(르노와 닛산은 동맹관계)에서 북미 수출용 차량을 일부 받아 위탁생산을 진행 중이다. 르노삼성은 위탁생산으로 공장가동률을 높여 기업 수익성을 크게 개선했다.

정부가 지원하고 노동조합이 진취적으로 미래를 계획한다면 대안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런 대안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노동조합이 ‘귀족노조’ 식의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산업과 고용에 관해 대안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계획하는 집단지성이 돼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지엠의 막장 경영 속에서도 어떻게든 함께 살기 위한 고용연대를 노조가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의 4월20일 부도신청 협박을 넘기는 지혜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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