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을 축소했다. 업무를 핵심과 비핵심으로 나누고,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했다. 위험도 아웃소싱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안전장치 없는 위험업무에 내몰렸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외주화된 상시·지속업무의 직접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외주화된 고용형태를 유지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노동자들이 현실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4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신대원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영흥지회장


발전소에는 1만여명의 정규직과 7천600여명의 비정규직이 있다. 비정규직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사용한 후 생기는 각종 유해가스를 처리하는 설비와 타고 남은 재를 처리하는 설비를 운영하거나, 발전소 주요 설비인 보일러·터빈·환경설비 등을 일상적으로 정비하는 일을 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외주업체 비정규 노동자였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한국전력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전문자회사를 설립하며 외주화가 시작됐다. 이제는 자회사보다 많은 용역업체가 난무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기업인 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에 시달린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346건의 산재사고로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었다.<표 참조> 심각한 것은 발전소 현장 안전사고가 대부분 하청 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무려 97%(337건)가 하청 노동자 산재사건이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로 사망한 40명 중 정규직은 3명이다. 2011년 이후 발전소 산재 사망자는 전부 비정규직이다.

원청인 발전소는 안전사고 책임을 하청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설비나 투자는 외면한 채 "안전규칙을 위반하면 퇴출한다"는 서명을 강요해 노동자 목소리를 억누른다.

발전소에서 용역노동자들에게 쓰도록 하는 서약서 내용을 보면 원청이 정한 10가지 안전수칙 중 1회를 위반하면 위반자는 작업현장에서 즉시 퇴출하고 소속회사에 벌점을 부여한다. 동일사항을 2회 위반하면 위반 당사자는 당해 공사에서 작업금지조치를 당하고 당사자가 소속된 조는 당일 작업이 금지된다. 이로 인해 산재사고가 은폐되기도 한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는다. 계획정비에 투입되는 경상정비 노동자들은 한 달에 잔업만 100시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원청인 발전사가 요구하는 공기를 맞추기 위해 잔업을 반복한다.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식지도 않은 보일러에 들어가 섭씨 80도에서 일한다. 언제 사고가 터질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현장이다. 최근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 등을 해결하기 위한 연료환경설비를 운영하는 것 역시 비정규 노동자들 몫이다. 이는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이다. 국민과 노동자 안전에 직결되는 업무를 민간에 맡기는 것은 국가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에서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기막힌 현실을 접했다. 공기업이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는 단순히 비용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한국에서도 세월호 참사나 구의역 사고로 경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4주기 추도식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발전 5사가 맡긴 정규직 전환 컨설팅 결과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비업무 부재로 인한 정전 발생 가능성 낮음(과거 사례 부재)”이라는 이유였다. 정전사태가 일어나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인가? 정말 국민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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