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올해 1월과 2월 업무상질병 승인율이 62.4%로, 지난해 승인율(52.9%) 대비 9.5%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뇌심혈관계질환 승인율은 지난해 32.6%에서, 올해 2월 43.4%로 10.8%포인트 증가했다. 고용노동부가 만성과로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발병 전 12주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한 경우만을 만성과로로 봤다면, 업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교대제 업무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다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평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업무환경 비교시 ‘유사 업무 수행 동종근로자’와의 비교를 삭제하고, 재해자 기초질환을 삭제해 재해노동자의 업무환경과 건강상황을 고려하도록 규정을 개정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산업재해심사승인제도의 핵심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질병판정위는 그동안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었다. 도입 뒤 첫 몇 년 동안 업무상질병 불승인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질병판정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도입된 뇌심혈관계질환과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강화된 인정기준 탓도 있지만, 질병판정위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운영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제도개선 종합대책(안)’(2010년 6월) 등을 제출하며 개선을 시도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업무상질병 불승인율 증가와 질병판정위 제도개선 문제는 당시 국회의 근로복지공단 국정감사에서 단골 메뉴가 됐다. 급기야 노동부가 나서 ‘산재보험 제도개선 TF’를 개최하고, 고심 끝에 ‘업무상질병 판정절차 개선방안’(2011년 12월)을 내놓았다. 이후 노사 간 다툼이 일부 잠잠해졌으나 현장 불만은 계속됐다. 여전히 불승인율은 높았고 개선은 더뎠다. 변하지 않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에 대한 비판보다 질병판정위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커져 갔다. 급기야 2016년 금속노조가 그동안 낮은 승인율로 도마에 올랐던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고 결국 그해 말 위원장이 사퇴했다.

필자는 2008년 도입된 뇌심혈관계질환·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과 해당 기준으로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정하는 질병판정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간혹 질병판정위 심의위원 참여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했다. 마지막 권유를 받은 것이 지난해 상반기였다. 질병판정위가 상당히 개선됐으니 참여해 달라는 얘기였다. 여전히 의구심은 있으나 참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서울질병판정위 심의위원으로 첫 번째 심의회의를 마친 후 여러 개선지점을 알 수 있었다. 심의회의 이전에 자료 일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비교적 충실한 재해조사, 자유롭고 충분한 토론, 위원들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비교적 높은 이해 수준, 중립적인 회의 진행, 신청인의 의견 참여 기회 보장 등이 그것이다. 필자가 서울질병판정위에서 경험한 것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동일한 기준과 제도라도 그 운영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심의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지난해와 올해 사이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앞서 얘기한 대로 만성과로 인정기준 변화로 뇌심혈관계질환 심의 과정에서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또한 최근 판례가 강조하는 추정의 원칙과 당사자주의를 감안해 기초질병이 있더라도 업무상 부담요인이 명확하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심의위원들 사이에 좀 더 확산되고 있다. 뇌심혈관계질환뿐만 아니라 근골격계질환 심의 과정에서도 나이에 따른 퇴행성 변화가 있더라도 업무상 부담요인이 명확하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좀 더 명확해졌다.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20여년 전부터 재해당사자와 노동안전보건운동 진영이 주장했던 바가 이제야 조금씩 반영되는 듯하다.

업무상질병 승인 여부는 일하다 병에 걸린 노동자에게는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에 관한 사회적 책임 문제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이제라도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 다행이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고자 하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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