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남북정상회담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정치 뉴스가 떠들썩하다. 이슈가 바뀌는 속도는 그야말로 ‘다이내믹 코리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거대한 사건들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은 너무나 크거나, 모호하거나, 머나먼 이야기여서 지금 당장 가늠하기 어렵다. 거대한 이슈와는 별개로 우리의 삶에, 청년들 삶에 영향을 줄 사안들이 다가오고 있다.

2019년 최저임금 결정 법정시한인 6월 말이 다가오고 있고, 7월부터는 3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최장 노동시간 52시간이 적용된다. 쉴 새 없이 뒤바뀌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도 그 이슈 너머에 있는 우리의 삶에 직접 영향을 줄 문제들에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얼마 전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가 고용노동부에 IT서비스산업을 노동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육상운송업·수상운송업·항공운송업·기타운송서비스업·보건업만 노사합의에 따라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가능한 특례업종이다. 협회 요청의 이유는 운영관리와 시스템 구축업무 모두 고정된 노동시간을 준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스템 장애 해결이나 긴급 보안패치·업데이트 등으로 갑작스럽게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고 신규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밤샘 개발과 테스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대로라면 중소·중견 IT서비스업체가 타격을 받게 되며, 이로 인해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다.

뉴스를 보고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동시간단축 시기만 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올해 7월 1일부터,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5~49인 사업장은 2021년부터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노사합의에 따라 2022년까지 특별연장근로 8시간이 추가로 허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2023년부터 노동시간단축법이 적용된다. 2016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으로 분류된 7천763개 사업체 중에서 58%가 5인 미만 사업체다. 20인 미만 사업체가 전체의 89%를 차지한다. 이런 통계를 생각하면 협회 의견이 정말로 IT업계 다수 입장인지 의아하다. 오히려 중소사업체 노동시간단축 시행시기가 너무 늦고, 5인 미만 사업체에는 적용시한조차 없어 문제고, 기업에서 사업체를 쪼개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수년 동안 살인적인 초과노동으로 지탄을 받았던 넷마블 등 게임업체가 지난해 심각한 초과노동과 임금체불로 근로감독을 받았다. IT업종을 특례업종으로 지정하자는 것은 노동시간단축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몸이 부서지도록 몰아서 일하는 ‘크런치 모드’ 같은 관행을 되풀이하겠다는 뜻이다.

IT업종은 경제의 디지털화와 함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새로운 노동 방식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산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의 IT산업은 과거 노동집약적 저임금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긴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저임금으로 개발인력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는 산업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는 등 세계에서 선진적인 인프라를 갖췄다고 여겨지던 시기는 옛날에 끝났다. 개발자 처우는 다단계 하청과 임금 후려치기, 무제한 노동으로 바닥을 치고 있다.

IT 개발에서는 장시간 노동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IT 인력이 고등교육 등을 통해 육성된 지금은 IT산업 초창기와 다를 수밖에 없다. 과거 방식에 익숙한 윗세대는 ‘사람을 쥐어짜면 코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IT산업을 저임금 몰아치기 노동으로 몰아넣은 조건들이 있다.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서비스 개발과 유지·보수를 병행하는 문제나,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해 사업 기한이나 업무 조정이 효율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원래 그런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들었다. IT산업은 종사하는 사람의 능력이 곧 산업 경쟁력이다. 노동시간 적용 제외 등을 주장하는 것은 대기업만 대변하는 행위다. 업계가 고민할 일은 중소규모 사업체 종사자 노동조건과 산업 전반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youngmin@youthun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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