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연대본부
“가끔 힘든 하루를 보내고 무의식 중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며 저기 치여서 내일 출근 안 했으면 좋겠다. (…)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그런 생각들이 너무 무서워서 지하철 1호선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올 때면 괜히 멀찍이 떨어져 안쪽으로 서곤 해요.”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국 사회 간호노동의 현실, 그리고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서울대병원 8년차 간호사 최원영씨가 한 말이다. 그는 자신도 고작 두 달간 트레이닝 후 중증도 높은 희귀환자들만 모인다는 서울대병원 내과중환자실에 배치돼 수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환자 두 명을 담당하는 것으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신규간호사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면 이것이 신규간호사의 잘못인지, 아니면 일개 간호사의 작은 실수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시스템의 문제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 17일 출범한 고 박선욱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명백한 업무상재해”라며 “제2의 박선욱 간호사가 나오기 전에 구조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신규간호사 교육제도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강경화 한림대 교수(간호학)는 “우리나라 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12.4%인데 신규간호사는 1년도 안 돼 병원을 떠나는 비율이 33.9%”라며 “신규간호사가 병원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업무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과 8~12개월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주의 경우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신규간호사에게 1년간 교육프로그램과 임상적응 기간을 제공한다. 병원별로도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일본은 2008년 신규간호사 2명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신입 간호직원 연수제도’를 신설했다. ‘간호사 등 인재확보 촉진에 관한 법’을 만들어 신규간호사 교육을 의무화한 것이다. 신규간호사 의료사고 발생률이 9.8%에서 7.8%로 줄고 이직률은 9.2%에서 7.9%로 감소했다.

공동대책위는 이날 토론회 결과를 바탕으로 '간호노동 법·제도 정책 마련을 위한 2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다음달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에 '간호사, 침묵을 깨다'라는 주제로 집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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