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8.3.30. 선고 2017구합83805 판결


1. 사건의 개요

고용노동부는 2017년 9월 파리바게뜨 본사와 11개 협력업체, 그리고 직영점·위탁점·가맹점 등 총 6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① 파리바게뜨가 5천378명의 제빵기사·카페기사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했고 ② 협력업체가 소속 기사들 근태자료를 조작(소위 꺾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연장·휴일근로수당 등 총 110억1천700만원을 미지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각 지방노동청장은 파리바게뜨에 총 5천309명의 근로자들을 직접고용하라는 내용의 시정지시를 했고, 협력업체들에게는 일정 기한까지 미지급 금품을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시정지시를 했다.

파리바게뜨와 협력업체들은 위와 같은 시정지시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본안판단에 앞서 각 시정지시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11월 위 집행정지 신청들을 각하했다.

파리바게뜨는 2018년 1월 노사합의로 제빵기사들을 합작회사에 직고용하기로 하면서 행정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협력업체들은 집행정지 각하결정에 대한 항고·재항고와 본안소송을 계속 진행했고, 2018년 3월 대상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이하에서는 대상판결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2. 사건의 쟁점 : 이 사건 시정지시의 처분성 인정 여부

근로기준법 56조(연장·야간 및 휴일근로)를 위반해 임금을 미지급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근기법 109조1항). 근로감독 결과 이러한 법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통상 관할 노동청에서 근로감독관집무규정 21조, 별표 3의 기준을 적용해 시정지시를 하고 기한 내에 시정을 완료하면 내사종결한다. 만일 기한 내에 시정하지 않으면 범죄인지 후 수사 착수 등 사법처리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시정지시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무분별한 범죄인지로 전과자를 양산하는 것보다는 사용자에게 스스로 위법사항을 시정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사용자뿐만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협력업체들은 위와 같은 시정지시 단계에서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정지시 자체의 취소와 집행정지를 구했다. 이 사건 시정지시로 인해 협력업체들이 소속 근로자들에게 미지급 수당을 지급하고 그 결과를 각 지방노동청장에게 보고할 의무가 구체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 부과(근기법 116조1호·3호), 범죄인지 및 수사개시의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사건 시정지시가 협력업체들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이 사건 시정지시는 행정소송(항고소송) 대상인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고, 따라서 협력업체들의 소는 모두 부적법해 각하됐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이 사건 시정지시의 법적 성격은 비권력적 사실행위인 행정지도(행정절차법 2조3호)에 해당한다. 관계법령 해석상 이 사건 시정지시는 사용자에게 스스로 위법사항을 시정할 기회를 부여해 사용자의 임의적 협력을 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시정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정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것도 근기법 13조·102조1항에 규정된 보고명령(위반시 근기법 116조에 따라 과태료의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② 이 사건 시정지시로 인해 협력업체들의 법률상 지위에 어떠한 변동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시정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우에도 일정한 불이익조치가 예정돼 있지 않다. 연장근로수당 등의 지급의무는 근기법 56조에 의해 곧바로 발생하는 것이지 시정지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근기법 109조에 의한 형사처벌 역시 근기법 56조 위반에 대한 제재이지 시정지시 불응에 대한 제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③ 이 사건 시정지시의 처분성을 인정해 행정소송을 통해 다툴 수 있도록 하더라도 협력업체들의 법적 불안을 조기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즉 (시정지시 취소 판결 여부와 관계없이) 관할 노동청은 즉시 범죄인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범죄인지를 할 수 있으며,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도 미지급 수당 지급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처분성을 인정할 실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4. 대상판결의 의의

첫째, 대상판결은 근로감독 결과에 따른 시정지시의 법적 성격과 그 취지에 관해 사용자의 임의적 협력을 구하는 행정지도로서 사용자에 대한 불이익처분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인지 전에 스스로 위법사항을 시정할 기회를 부여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점은 파리바게뜨에 대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의 직접고용 시정지시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판단됐다(집행정지 신청 각하결정).

둘째, 이 사건에서 파리바게뜨 본사와 협력업체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집행정지 결정을 통해 범죄인지 및 수사개시를 지연·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집행정지의 경우 인용되는 확률이 높은데, 만일 법원이 시정지시에 대해 집행정지 결정을 한다면 관할 노동청으로서는 이를 무시하고 수사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은 시정지시의 처분성을 인정하지 않고 협력업체들의 소를 모두 각하했는바, 이로써 시정지시에 대한 불복은 관련 수사와 형사재판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대상판결은 근로감독관집무규정 21조1항 단서 4호(고의 또는 중과실로 주요 근로조건을 위반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즉시 범죄인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즉시 범죄인지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를 언급하면서, 법원이 시정지시를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관할 노동청은 즉시 범죄인지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시정지시에 대한 행정소송으로 노동법 위반 형사사건의 진행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적극적인 근로감독과 그에 따른 법 집행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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