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람 기자
땡볕에 그을린 늙은 노동자가 손피켓 위 국화를 한참 바라봤다. 등에는 ‘열자! 산별시대, 가자! 평등세상’이라고 적힌 금속노조 투쟁조끼를 걸쳤다. 죽도록 일하다 먼저 간 동료 노동자라도 떠올렸을까. 앞으로 굽은 고개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눈빛은 갈수록 형형해졌다. 국화 송이 아래엔 ‘추모 산재사망노동자’라는 글씨와 세월호 근조리본이 그려져 있었다. 민주노총이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4·28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조합원 1천여명이 참석했다.

"다단계 고용·근로시간 특례가 죽음으로 내몰아"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이날을 전후해 전 세계 110개 국가가 산재사망자를 추모하는 공동행동을 한다. 올해는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온도계를 만들다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군의 30주기다.

문군이 숨진 그해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이 시작됐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이황화탄소 중독이 확인된 후 지금까지 229명 이상이 사망했다. 민주노총은 “30년이 지난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처참한 안전보건 현실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노동자 2천400여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 1위 국가다. 김명환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다른 날도 아닌 지난해 노동절에 쉬지 못하고 일할 수밖에 없었던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비정규 하청노동자 6명이 크레인 충돌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며 “사고 원인은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시킨 다단계 고용구조”라고 지적했다. 최근 5년간 11개 조선사업장에서 산재로 숨진 노동자의 87%가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우정사업본부 노동자 10명이 과로사했는데,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함에도 국회가 노동시간특례를 유지하면서 112만 노동자들을 또다시 위험으로 내몰고 있다”며 “국회는 즉시 근로기준법 59조를 폐기하고, 근기법을 위반한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재용 처벌해야 안전하게 일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숨진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도 이날 집회에 함께했다. 그는 딸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흰색 방진복을 입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국가핵심 기술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앞서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정부가 노동계와 유가족의 보고서 공개 요구를 막은 모양새다. 이날 대회 참가자들은 “노동자 알권리 침해하는 몸통,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황상기씨는 “삼성이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유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2인 1조로 반도체를 화학약품에 넣다 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삼성은 처음엔 화학물질이 없다고 하더니, 쓴 사실이 밝혀지자 안전한 화학약품을 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해물질이 나오니까 영업비밀이라면서 말을 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황씨는 “산업통산자원부와 국민권익위는 노동자가 아닌 삼성만을 위해 존재한다”며 “이자들을 끌어내리고 이재용을 처벌해야 노동자가 안전한 세상에서 일할 수 있다”고 소리 높였다.

노동자들은 종로와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거쳐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까지 행진했다. 신세계 이마트에서는 3월 말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다.

이들은 △산재사망 원청책임 강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과로사·과로자살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 △근로기준법 59조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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