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세계노동절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을 새로 쓰자고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노동자는 하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단상에 선 대표자 외침에 조합원들이 박수로 답했다. 세계인이 노동자 이름으로 하나 되는 노동절.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이 노동자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노동자들은 손을 맞잡고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고 외쳤다. 촛불혁명과 남북정상회담, 삼성 무노조 경영 폐기를 이룬 자신감으로 일터에서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목소리다.

민주노총이 이날 서울광장에서 128주년 세계노동절을 기념하는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수도권 조합원 2만여명이 참가했다. 민주노총 시·도 지역본부는 전국 16곳에서 노동절 기념집회를 했다. 전국에서 노동자 5만여명이 “재벌을 개혁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점입가경 재벌갑질 끝장내자"=본대회 전 서울광장 인근에서 여러 사전대회가 열렸다. 어느 때보다 재벌그룹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한항공과 삼성그룹 등에 갑질·산업재해 책임을 묻는 결의대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공공운수노조는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앞에서 '범죄 총수 일가 경영권 박탈 및 재벌체제 청산' 결의대회를 열고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재벌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4년 전 '땅콩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은 결의대회에 참석해 "부당함을 자각하고 개선해 나가면 좋겠다"며 "피해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기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은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사기업인 대한항공 오너 경영진에게 면피를 주는 제도가 돼 버렸다"며 "재벌 항공사 갑질에 대한 일시적 관심에 멈추지 말고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해제까지 해 달라"고 호소했다. 공공운수노조 소속 항공사노조들은 민간항공사에 대한 필수공익사업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박배일 노조 부위원장은 "노동자를 개돼지 취급하는 재벌의 패악질에 가까운 갑질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기업을 바로잡을 세력인 노조와 시민들이 함께할 때 재벌 패악질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범죄·갑질 오너일가 완전 퇴진' 패널에 '대한항공 노동자의 눈물'이라고 적힌 큰 물통에서 물을 떠서 끼얹는 퍼포먼스를 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삼성재벌 총수 일가의 노조파괴 행위를 규탄했다. 곽형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삼성과 정부가 결탁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며 "삼성을 감시하고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절 하루 전날인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1년 전 산재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사고로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노동절 당일 오전 같은 자리에서 결의대회를 했다. 김동성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삼성중공업 이윤을 위해 무리한 작업을 강행하면서 벌어진 엄청난 사고인데도 원청은 전혀 책임지지 않았다"며 "모든 문제의 근원인 다단계 하청구조가 철폐될 때까지 투쟁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는 SK그룹 본사인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 앞에서, 서비스연맹은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사전대회를 열었다.

청와대 앞도 시끌벅적했다. 교원과 공무원은 노조할 권리를 요구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청와대 인근에서 각각 기자회견과 결의대회를 열고 "교사·공무원도 노동자"라며 노동 3권 보장을 촉구했다. 공무원노조는 해직자 복직과 완전한 노동 3권 정치기본권 쟁취 결의대회에서 "노동기본권은 누구에게는 보장해 주지 않아도 되는 시혜적 권리가 아니다"며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 쟁취, 해직자 원직복직을 위해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아직 법외노조인 전교조는 "노동자에게 휴일인 노동절에 교사들이 출근해야 하는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 교사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보여 준다"며 "이명박·박근혜 적폐인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해결이 요원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와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의견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공공연대노조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결의대회를 했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한 당사자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공공기관 비정규 노동자의 실질적 처우개선을 위한 정규직 전환 예산 확보와 임금체계·승진 등 차별 없는 정규직화, 노동부 위탁 전화상담원 직접고용을 주문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중앙 계단에서 '일터를 바꾸고 국민건강을 구하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200만 조합원 시대 열자"=서울광장에 모인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열자 200만 시대” 손피켓을 들고 있었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과거 10여년 동안 70만명 내외로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올해에만 7만5천여명이 느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달 현재 조합원이 80만명을 웃돈 상태다.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은 “노동자는 하나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라” “비정규직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시민들은 구호를 따라 외치고 박수를 쳤다. 서울 금호동에 산다는 우아무개씨(48)씨도 그중 한 명이다.

“세 번째 참여하는 노동절 집회입니다. 지금까지 집회 때보다 분위기가 사뭇 좋아진 것이 느껴져요. 거친 분위기가 축제 같은 느낌으로 변했고, 서로를 위해 주는 것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가 당장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노동자들이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주장하면 변화가 올 거라 믿습니다.”

이날 대회는 인터네셔널가에 맞춰 수백 개의 노조 깃발이 서울광장을 동서로 가로질러 무대로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128주년 노동절을 관통하는 우리의 요구와 결의는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라는 것"이라며 "노동헌법 쟁취와 노동법 전면 개정, 재벌체제를 해체하고 재벌을 개혁해 노동을 새로 쓰고 재벌왕국 대한민국을 바꾸자”고 호소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잘한다는 지지율이 70%라고 하지만 노동자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요란한 말잔치가 아니라 단결과 투쟁의 과정을 통해 노동존중 세상의 실질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쟁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삼성 교섭장으로, 민주노총 자랑스럽다"=연대사를 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장애인도 노동자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도 노동자니까 중증장애인을 최저임금에서 적용제외 하지 마라”며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중증장애인 일자리 1만개 창출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삼성에서 '노조 인정' 약속을 이끌어 낸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표지회장은 무대에 올라 감색 점퍼를 벗고 마이크를 잡았다. 노란색 반팔 셔츠가 드러났다.

“삼성 무노조 경영에 80년 만에 봄이 왔다는 뜻에서 노란색 셔츠를 입었습니다. 봄은 왔지만 노동자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재벌적폐를 청산해 모든 노동자의 봄을 여는 투쟁을 하겠습니다.”

샤란 버로우 국제노총(ITUC) 사무총장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 2억700만 조합원과 국제노총은 삼성을 교섭장으로 끌어낸 민주노총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끝으로 ‘한국 사회 노동을 새로 쓰자’ 선언식이 열렸다. 대회 참가자들은 △구조조정·정리해고 철폐 △평등사회 쟁취 △성차별·성희롱·성폭력 중단 △재벌적폐 청산을 다짐했다. 노동자들은 서울광장에서 종로 4가로 행진했다. 민주노총은 “올해 노동절대회를 계기로 노동헌법 제정과 노동법 개정, 재벌개혁 투쟁, 200만 조합원 시대를 열기 위한 투쟁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양우람·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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