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동을 멈춘 한국지엠 군산공장 쉼터 화단에 2012년 신입 직원들이 세운 입사기념 식수 팻말이 서 있다.<정기훈 기자>

그야말로 격랑이었다. 거센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공허한 자찬과 기약 없는 약속만 덩그러니 남았다. 희망을 잃은 수천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떴다. 그런 후 좌절감에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남은 노동자들은 언제일지 모를 전환배치와 무급휴직을 기다리고 있다. 공장 폐쇄 전조라는 1교대제 개편 소문이 공장과 공장을 떠다닌다.

올해 상반기 숱한 화제를 낳았던 사업장, 한국지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얘기다. 그것도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됐다는 정규직 사례다. 정규직 일자리의 총알받이가 됐던 비정규직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외됐다. 정부는 최근 제너럴 모터스(GM)와 한국지엠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마쳤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우리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고, 지엠도 만족할 만한 윈윈 협상”이라고 밝혔다. 배리 엥글 지엠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산업은행과 한국 정부, 노조 및 협력사 파트너들과 회사, 나아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될 경영정상화 방안의 토대를 마련해 냈다”고 평가했다. 노동자들도 같은 생각일까. <매일노동뉴스>가 한국지엠 창원·군산·부평공장을 찾아가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 사태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지엠 사태 재연을 우려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희망퇴직하지 마요, 그러면 죽으니…"

차량을 통제하는 차단봉 너머로 깊은 적막이 흘렀다. 프레스·도장·조립·엔진 등 공정별 공장들이 멀리 서편으로 사이좋게 줄지어 늘어섰다.

공장 사이사이엔 광장처럼 드넓은 대로가 놓였지만 인기척 하나 없다. 122만3천10제곱미터(37만평) 부지에 1997년 설립한 연간 26만대 규모의 조립공장이 서 있다.

지난 21일 오후 군산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해 있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동문쪽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날씨는 흐리지 않았지만 광활한 공간에 회색빛이 도는 공장만 남아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날 공장 안 금속노조 한국지엠군산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황두만(44)씨 표정이 꼭 그랬다. 그는 한국지엠 전신인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군산공장에서 일했다. 18년 프레스 공정에 몸담다 군산공장에 1교대제가 도입된 2015년부터는 품질관리와 조립부에서 일했다. 햇수로 22년째다. 그는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동생에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한국지엠은 폐쇄 발표 직전 전체 직원들에게 휴무 조치를 내렸다.

“처음엔 오보다 싶었어요. 그전에도 철수설이 워낙 자주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누가 카톡 그룹창에 회사가 낸 공문을 띄웠더라고요. 그때서야 아차 싶었어요. 멍해지더군요.”

회사가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하기 전 공장가동률은 20%에서 25% 사이를 오가는 정도였다. 회사는 낮은 공장가동률을 이유로 공장 폐쇄를 자주 언급했다. 말이 반복되자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단다. 익숙해진 공포는 사람들을 둔하게 만들었다. 공장 폐쇄 계획이 발표되고 희망퇴직 접수가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지회 조합원 3분의 2가량이 두 번의 희망퇴직 때 회사를 떠나겠다고 신청했다. 이제 600여명 정도가 남았다. 황씨도 그중 한 명이다.

“솔직히 먹고살기 위해 그랬어요. 이만한 일자리가 또 없으니까요. 같이 일하는 형이 '아내가 말하더라'며 전한 얘기가 있어요. 1차 희망퇴직 때는 ‘쓰고 나와라’고 했었는데, 2차에 형이 고민하니 ‘그러지 말라’고요. 희망퇴직하고 죽은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국지엠 사태와 관련해 총 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모두 희망퇴직 신청자였다. 회사 밖으로 걸어나간 뒤 느꼈을 벽 앞에 선 듯한 막막함이 공장 안에서 겪은 불안감보다 사람을 더 궁지로 내몰았다는 얘기다. 군산공장 잔류자들은 다른 공장으로 전환배치된다. 방식·규모·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황씨는 “회사가 부도났을 때 하청업체에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적도 있고, 일이 없을 땐 부평이나 창원공장에 가서 일한 적도 있다”며 “늘 팔려다니며 살아와 이번 전환배치도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외국자본의 속성에서 기인한 기업의 비도덕적인 운영 사례가 비단 한국지엠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먹튀방지법 등을 제정해 앞으로 동일한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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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부평공장 불안한 건 매한가지 

공장 폐쇄라는 극약처방을 받고 황씨가 옮겨 갈 창원과 부평공장. 거기서는 안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군산공장을 찾기 6일 전 방문한 창원공장은 겉으론 멀쩡해 보였다. 노조 한국지엠창원지회를 방문하고 밖으로 나선 순간이 때마침 1조와 2조의 교대시간인 오후 3시40분 무렵이었다.

출근하는 노동자들과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맞물려 공장 앞 대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창원공장의 현재 가동률은 98%에 달한다. 물량이 달려 공장을 세울 일이 거의 없다. 더욱이 산업은행과 지엠의 한국지엠 정상화 방안에는 창원공장에 향후 5년간 8천250억원을 투자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고, 출근하는 사람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이런 표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노사 교섭에서 노동자들의 많은 양보가 있어 일부는 아쉬워하고, 일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냐고 합니다. 그래도 협상 결과 부도처리로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는 것이 현장의 정서예요.”

이날 창원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정 정책2부장의 말이다. 한국지엠지부와 한국지엠은 지난달 말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받지 않으며, 각종 복리후생을 삭감하는 쪽으로 단체협약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노사 합의에는 창원공장에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을 배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런 방안은 창원공장의 생산차량 포트폴리오 변화에 따른 조치다. 창원공장은 스파크·라보·다마스를 생산한다. 한국지엠의 경차 생산기지다. 라보와 다마스는 2019년 이후 환경규제로 생산이 중단된다. 한국지엠의 내수 판매를 이끌고 있는 스파크도 경차 인기가 감소하고 있는 시장 추세에 따라 4년 후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다.

김병정 부장은 “회사가 나날이 물량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도 물량이 줄면 주간연속 2교대제를 1교대제로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내년에 다마스·라보 생산이 중단되고, 추후 군산공장 전환배치가 이뤄지면 상당수의 유휴인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창원공장에서는 완성차 14만9천152대가 생산됐다. 2016년 20만3천895대보다 4분의 1 이상이 줄었다. 올해 상반기 생산량도 지난해와 유사한 규모다.

"10년 사업 유지? 언제라도 방 뺄 것"

창원공장 조립공장에서 만난 노동자들 걱정은 컸다. 조립생산2과에서 일하는 송충효(37)씨가 작업장 중간 중간 마련된 의자에서 잠시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있었다.

“회사가 미래발전 방안이라며 창원공장에 신차를 배정했다고는 하지만 그 실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신규투자와 10년 경영을 약속했다지만 지엠이 그동안 보였던 행태를 봤을 때 전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권아무개(51)씨는 “지엠이 한국을 이미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어 해외 사례를 봤을 때도 약속한 만큼의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10년간 사업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판매량이 부족하고 시장 상황이 변하면 언제라도 방을 빼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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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공장 우려 목소리는 더 높다. 노사는 내수·수출용 신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부평공장에 배정하기로 했다. 신차는 트랙스 후속모델로 부평1공장에서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부평2공장의 경우 낮은 가동률에 신차 배정에서도 제외되면서 노동자들의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회사는 공장 안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부평2공장 가동률은 30% 수준이다. 주력 차량인 말리부의 국내 판매량이 급감하고, 지엠이 캡티바 후속 모델인 이퀴녹스를 미국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말리부도 2021년 단종될 예정이다. 회사가 최근 지부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1교대제 개편 설명회를 연 배경이다.

개편이 이뤄지면 부평2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직 1천500여명 중 절반이 유휴인력으로 분류된다. 이들에게 인소싱 등 기존과 다른 업무를 맡길 가능성이 크다. 인소싱은 비정규직이 하던 업무에 정규직을 투입하는 것을 뜻한다. 군산공장도 폐쇄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정규직 1교제 전환과 대규모 인소싱이 이뤄졌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한국지엠이 과거에도 부평공장에서 인소싱을 한 바 있기 때문에 인소싱 뒤 공장 폐쇄라는 공식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 폐쇄나 구조조정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공장 폐쇄 전조, 1교대제·인소싱 확산하나

인소싱은 비정규직 해고를 부른다. 부평공장 남문에서 출입이 막혀 어쩔 수 없이 공장을 바라보고 오른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약 1킬로미터 떨어진 부평공장 정문. 공장 안과 밖을 가르는 고동색 철제 담장에는 마치 만국기처럼 형형색색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살려야 할 것은 지엠이 아니라 노동자다” “먹튀자본 끝장 내고 지엠 투쟁 승리하자” “노동자가 왜 나가나, 경영 잘못했으면 경영자가 나가라”는 항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어졌다.

정문 왼쪽으로는 파란색 방수포를 머리에 얹은 두 동의 천막농성장이 꾸러져 있다. 이날로 천막농성 113일째를 맞은 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의 베이스캠프다. 조합원들은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 춭퇴근 선전전을 하고, 순번을 정해 농성장을 지킨다.

부평공장에선 지난해 말 66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해고됐다. 이 중 17명이 인소싱으로 해고됐고, 나머지는 업체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 중 12명이 지회 조합원이다. 퇴근 선전전 시작을 앞두고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서형태 지회 사무장이 격앙된 어투로 얘기했다.

“한국지엠이 부평2공장 1교대제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330여명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는데요. 계획이 이행되면 절반인 160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인소싱을 하지 않더라도요. 정규직이야 전환배치나 유급휴직 등으로 고용이 보장되지만 비정규직은 그런 게 없어요. 그냥 일자리가 날아가는 겁니다.”

서형태 사무장은 “당면한 상황은 아니지만 군산공장에서 그랬듯 부평2공장 정규직의 절반인 750여명이 인소싱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추후 비정규직 전원 해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선전전 중 잠시 짬을 낸 신현철(43)씨는 “이번 한국지엠 사태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굉장히 형식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한국지엠 협력사에서 일하다 업체폐업으로 해고됐다. 2003년 입사 후 두 번째다. 2009년 해고 후 지난한 복직투쟁 끝에 2013년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도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와 자본의 태도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힘을 가진 소수하고만 협상하려고 합니다. 피해 당사자이자 오랫동안 핍박받았던 비정규직은 불편해하고 의도적으로 논의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그들이 줄곧 취하는 태도입니다.”

지부와 한국지엠, 산업은행과 지엠이 하는 교섭이나 협상에선 비정규직 고용 문제는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한 날 인천지법은 부평공장과 군산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실제 사용자는 한국지엠이라고 판결했다. 한국지엠이 비정규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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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 피하려 해고 남발?

“대법원 판결대로 정규직 전환을 해도 모자랄 판에 해고라니요.”

창원공장 앞을 흐르는 남산천 너머 자리한 컨테이너 농성장에서 만난 표세동(47)씨. 그가 선 굵은 목소리로 한숨짓듯 하소연을 쏟아 냈다. 표세동씨는 노조 한국지엠창원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표씨는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에서 10년 이상 트랜스미션을 조립했다. 지난해 10월 자신이 하던 일에 정규직이 투입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가 64명이나 된다. 대법원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가 정규직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두 번에 걸쳐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법원의 직접고용 명령을 묵살하고 있다. 인소싱으로 폐업한다는 두 업체는 올해 초 이름을 바꿔 달고 직원 채용공고를 냈다. 조건은 3개월 계약직이다. 지회 조합원들은 응시하지 않았다.

표씨는 “조합원들이 많은 협력업체들이 노조활동을 방해하려고 위장폐업한 뒤 원청에서 다시 일을 수주하는 경우가 잦다”며 “고용노동부는 하루빨리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소싱이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국지엠 창원공장을 수시근로감독했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

진환 지회 사무장은 “회사는 지속적으로 편성률을 높이고 있다”며 “현재의 노동강도를 유지하거나 조금 낮추면 인소싱 없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 노조가 총고용을 지키는 방향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군산공장 폐쇄가 예고된 뒤 2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해고됐다. 2015년 군산공장에 1교대제가 도입될 당시 인소싱으로 1천여명이 해고된 뒤 남은 인력들이다. 당시부터 지금껏 8명의 노동자가 1천일 하고도 두 달이 넘도록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노조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그들이다. 5명은 생업에 종사하며 투쟁 중이다. 3명은 최근 상경해 정부서울청사와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이달 23일 오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이완규 부지회장을 만났다.

“한국지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처음으로 연대해서 함께 결의대회를 하고, 투쟁을 만들어 갔는데 특별한 결과물이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산업은행이 당초 예상보다 많은 국민혈세를 투입하면서도 노동자들 고용보장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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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정부 동맹으로 지엠 이후 대비해야"

공장과 농성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산업은행과 지엠이 말하는 ‘윈윈 협상’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유사하다. 지엠이 투자하기로 한 자금 성격과 산업은행이 제시한 논거의 부실함을 감안했을 때 한국지엠의 지속가능한 경영은 허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엠과 산업은행은 한국지엠 정상화를 위해 7조6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중 산업은행은 8천100억원을 부담한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지엠이 낸다는 돈은 원래 투자하기로 했던 것이거나 일반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 또 기존에 내준 빚을 출자전환하는 것에 불과할 뿐 신규자금이 아니다”며 “결과적으로 지엠은 당장 들어오는 산업은행 돈으로 공장을 몇 년 더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 경영실사 뒤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자금지원을 결정했다. 한국지엠 부실 원인으로 지목됐던 과도한 연구개발비·이전가격·고금리·매출원가 비율은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산업은행은 노동계 실사 결과 공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초국적기업이 특정 지역에 공장을 넣고 빼는 것을 자신들의 글로벌 전략으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국내 노사정이 협상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구조에서 교섭이 진행됐고, 이는 부족하고 아쉬운 결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훗날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조성재 선임연구위원은 “전 세계 자동차산업 시장이 한국지엠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세단형·소형 SUV에서 중대형 SUV·트럭으로 옮아가고 향후 전기차 상용화가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며 “약점을 극복하고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지로 가꿔 나가려는 노력이 지금부터 필요해 보인다”고 주문했다. 노조와 정부가 ‘지엠 이후’를 염두에 두고 함께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엠은 과거에도 한국지엠에 8조원 투자를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한지원 연구원은 “산업은행은 주주 논리로만, 노조는 ‘물량이 고용’이라는 프레임으로만 접근하면 앞으로도 지엠을 상대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며 “노조와 산업은행이 동맹을 맺어 공장별 분할매각·임대·위탁생산 등 지엠 이후 생존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산공장 폐쇄로 휘청이는 지역경제
공장이 떠나자 노동자도, 주민도 떠났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저마다 군산공장 폐쇄 여파에 따른 지역경제 악화의 피해자였다.

경기 남부지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장 빨리 군산공장에 닿는 방법은 지제역에서 수서고속열차(SRT)를 타고 익산역에 내려 택시를 타는 것이다. 전주·익산지역에서 22년 동안 택시를 운전했다는 김경천(48)씨는 “군산공장 폐쇄로 지역 경기가 죽은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못 해도 일주일에 2~3번은 장거리 손님을 태우고 갔어요. 지금은 가는 사람이 없어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해요.”

김씨는 “처형과 처남이 군산에서 같이 조립식 건물을 짓고 인테리어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이후 일감이 없어 무척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군산국가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명동’으로 부르던 오식도동은 빈 굴, 공동으로 변했다. 오식도동 서쪽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지난해 7월 문을 닫고 나서 흔들리던 상권이 군산공장 폐쇄로 무너져 내렸다. 한낮 성냥갑처럼 늘어서 있는 수십동 원룸 건물 한복판에 서 있어도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ㄷ공인중계사 대표 전아무개씨는 “수십 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건물에 지금은 많아야 한두 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도, 식당에도 손님을 손으로 꼽을 수준이다. 4년 전 이곳에 식당을 차린 오아무개(71)씨는 텅 빈 가게에서 김치찌개를 끓여 지인과 함께 낮술 한잔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가게를 차렸을 때만 해도 때 되면 손님이 바글바글했어요. 이제는 아무도 안 와요. 장사를 접고 딴 곳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원룸촌으로 불렸다는 인근 소룡동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심부의 한 상가 건물 1층의 상가 6곳 중 3곳의 벽면에 ‘임대 문의’라고 쓰인 종이가 붙었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2018년 1분기 지역경제 동향'에 따르면 전북지역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천900명 감소했다. 전입자수에서 전출자수를 뺀 인구감소 규모도 5천19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룡동의 한 유명 프랜차이즈 편의점 입구엔 “군산경제를 응원합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양우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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