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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우리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청년 마르크스>

기사승인 2018.05.28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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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마르크스>는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나온 전기영화다. 마르크스가 프랑스로 망명하기 직전인 1843년부터 <공산주의자 선언>을 발간한 1848년까지의 사상적·정치적 궤적을 담는다. 영화는 실존인물들이 남긴 글이나 편지를 바탕으로,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한다. 라울 펙 감독은 아이티 공화국 출신이다. 마틴 루터 킹·말콤 엑스 등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를 담은 전작 <아임 낫 유어 니그로>(2016)가 베를린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는 대단히 진중하게 19세기 유럽 사회를 조명하며, 당시 사회변혁에 매진했던 혁명가들의 열정과 내부투쟁을 치열하게 보여 준다.

프랑스로 망명 온 마르크스, 엥겔스를 만나다

영화는 1843년 <라인신문>에 실린 마르크스 글을 낭독하는 목소리로 시작된다. 청년 헤겔학파들이 주축이 돼 창간한 <라인신문>은 반정부적인 기사로 가득했다. 정부 탄압이 시작되자 논조를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편집장이던 마르크스는 더 강한 논조의 글을 실었다. 결국 1843년 1월 폐간 명령을 받자,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새로운 잡지를 만들자는 루게의 제안에 따라 1843년 3월 파리로 망명한다.

루게와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독일-프랑스 연보>를 발간하지만 이마저도 폐간당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하며 평생의 동지인 엥겔스와 만나게 된다. 루게의 집에서 엥겔스와 마주친 마르크스는 구면임을 알아본다. 둘은 2년 전 독일에서 만난 적 있지만 교류하지 않았다. 엥겔스를 ‘재미 삼아 하층계급과 어울리는 부자 아마추어’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프랑스 연보>에 실린 마르크스 글을 모두 읽어 봤다는 엥겔스의 말에 토론이 불붙는다. 두 사람은 함께 술 마시고 돌아다니며 급격히 친해진다.

영화는 앞부분에서 엥겔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준다. 엥겔스는 맨체스터 방직공장을 소유한 사장 아들로, 회계 일을 맡고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문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청년 헤겔학파 사상에 이끌렸다. 그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삶을 조사해 <영국 노동계급의 실태>를 집필했다. 그는 산업혁명과 무역 팽창으로 노동자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양산됐음에 주목해 기계제 공장노동자들의 중요성을 당시 사회주의자들에게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에 주목하기 시작했을 때 영국의 경제학을 읽으라고 조언한 이도 엥겔스였다.

‘의인동맹’ 속 사상투쟁

영화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지만, 이들을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들로 그리지 않는다. 이들이 프루동·바이틀링 등 당시 혁명가들이나 국제적 비밀결사였던 ‘의인동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마르크스가 ‘공화주의자 대회’에 가서 프루동의 연설을 듣는 장면은 흥미롭다. 프루동은 당시 대표적인 사상가로 추종자들이 많았다. 수공업 직인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변혁을 꿈꿨던 그는 “소유는 도둑질”이라고 선언했다. 꽤나 급진적으로 들리는 프루동의 주장에 마르크스는 ‘추상적인 상징’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적 분석이나 개념 없이, 사유재산 철폐나 균등임금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상적 사회주의’라 부르며, 자신의 사상인 ‘과학적 사회주의’와 구분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청년 헤겔학파들을 ‘비판적 비판주의자들’이라 부르며,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이란 부제가 붙은 <신성가족>을 공동 집필한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위해 프루동과 잠시 협력하지만 곧 결별한다. 프루동의 신간 <빈곤의 철학>에 맞서 <철학의 빈곤>을 쓸 정도로 사상투쟁을 내려놓지 않는다.

파리에서 추방당한 마르크스가 브뤼셀로 거처를 옮길 무렵, 혁명가들의 비밀결사인 의인동맹과 접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당시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하던 바이틀링과 논쟁한다. 자신이 노동계급 출신임을 강조하며 지식인의 위선을 비웃는 바이틀링에게 마르크스는 “무지가 도움이 된 적은 없다”고 받아친다. 마르크스는 명확한 이론 없이 메시아처럼 무장봉기를 선동하는 바이틀링을 비판한다. 한편 의인동맹의 폭력·비폭력 논쟁도 흥미롭다. 마르크스는 ‘전 인류가 형제’라는 샤퍼에 반대해 “부르주아와 노동자는 형제가 아닌 적”이라고 말하며, 체제 개량이 아닌 총체적 혁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의인동맹 내부 사상투쟁과 노선투쟁을 거치면서 지도력을 얻게 된 마르크스는 1847년에 단체 이름을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바꾼다. 이 결사의 강령적 문서가 바로 <공산주의자 선언>이다.

마르크스의 예니, 엥겔스의 메리

<청년 마르크스>는 여느 남성 전기영화들과 달리 여성 인물들을 주변화하지 않는다. 귀족의 딸이었던 예니는 마르크스와 결혼한 뒤 궁핍과 추방을 겪어야 했다. 관습적인 영화였다면, 예니를 ‘큰일 하는 남편에게 짐이 되는 아내’로 그리거나,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헌신하는 부인’으로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예니를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지로 그린다. 예니는 자신이 귀족생활의 끔찍한 권태에서 도망친 거라 말하며, 구체제에 대한 저항을 역설한다. 예니는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다른 사상가들과 지적인 토론을 하며, 마르크스에게 의인동맹 가입을 적극 권하는 등 정치활동을 지지한다.

엥겔스의 아내 메리 역시 주체적인 여성이다. 사장에게 항의하다 해고된 노동자 메리가 사장 아들인 엥겔스와 사랑에 빠진 경우지만,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다. 엥겔스가 노동자들의 삶에 품었던 관심은 평생 유지됐고, 메리 역시 엥겔스와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평생 곁에 있었다. 엥겔스에게 영국의 의인동맹을 소개한 사람이 메리일 만큼 메리 역시 열렬한 활동가였다. 그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느냐는 예니의 질문에 “돈도 없고 갖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엥겔스가 부자임을 감안하면, 그녀가 얼마나 독립적인 인물인지 알려 주는 대답이다. 메리는 자신의 동생 리지가 엥겔스의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이들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강제하는 일부일처제 결혼에서 한발 떨어져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라인신문> 기사를 읽어 주며 시작한 영화는 <공산주의자 선언>을 들려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공산주의자 선언> 출간 직후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났음을 알려 준다. 영화는 자본주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문제의식도 아직 유효하다는 말을 여운처럼 남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직면했던 상황이나 문제의식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 공감할 것이다. 특히 조직 안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질감을 더욱 크게 느낄 것이다. 200년의 세월을 넘어 그들과 만난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이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황진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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