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윤자은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와 재판을 미끼로 부당거래한 사실이 드러나자 노동계가 충격에 빠졌다. 박근혜 정권의 눈엣가시였던 노동 사건들이 대거 제물로 바쳐졌기 때문이다. 28일 KTX 해고 승무원을 비롯한 피해 노동자들은 "추악한 거래로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목숨까지 잃었다"며 "이런 불행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7월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을 만들어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에 협조한 사례를 열거했다. 여기에는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KTX 승무원 근로자지위확인 사건 △통상임금 사건 △쌍용차·콜텍 정리해고 사건 등이 포함됐다. 실제 판결은 어땠을까.

◇ 해고 노동자 ‘사법 살인’한 대법원=대법원은 문건에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해 정리해고 요건의 정립이 필요한데 선진적인 기준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며 두 건의 판례를 사례로 제시했다. 하나는 2012년 콜텍 정리해고 사건(대법원 2010다3735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대법원 2012다14517 판결)이다. 두 판결 모두 노동계로부터 "대법원이 해고노동자를 두 번 죽였다"는 평가를 받는 사건이다.

악기 제조업체 콜텍은 2007년 10월 회사가 흑자를 기록하고도 노사갈등과 생산량 저하를 이유로 대전공장을 폐업하고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이에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했다. 2심 법원은 기업 전체의 경영사정을 고려할 때 정리해고 요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며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업 전체 실적이 흑자라도 일부 사업부문이 경영악화를 겪는 경우 해당 부문을 축소·폐지하고 잉여인력을 감축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며 "전체적으로 재무구조가 안정적이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에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정리해고에 날개를 달아 준 판결로, 긴박한 경영상 요건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마찬가지로 2심 재판부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갖추지 못했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아 무효'라고 선고했던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도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당시 2심은 회사가 제기한 회계법인의 보고서에 대해 신차 출시로 들어올 매출량은 빼고 구차 단종으로 인한 위험만을 강조한 ‘부풀려진 위기’라고 봤는데 대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어 예상매출 추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 가정을 기초로 한 것이라면 그 추정이 다소 보수적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합리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대폭 완화된 기준을 제시했다.

KTX 승무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도 원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와 다른 특별한 법리를 내세우지 않은 채 "코레일과 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노동자 파견계약 관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노동계는 "대법원이 이유 없이 원심을 파기했다"며 "판결문이 아니라 공문서 위조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 뒷거래 희생양, 노동기본권=헌법에 보장된 노동자 파업권·단결권도 대법원과 청와대의 뒷거래에 희생됐다. 대법원은 문건에서 철도노조 파업사건을 “노사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파업의 법적 기준을 정립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 2009년 철도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사건(대법원 2011도468 판결)이다.

2014년 8월 대법원은 2009년 철도노조 파업이 업무방해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철도공사 사업장 특성상 업무 대체가 쉽지 않아 사측의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미리 파업 일정이 예고됐거나 알려졌다고 해서 (예측 가능성을)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2011년 업무방해죄 성립요건을 대폭 완화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별다른 법리를 제시하지 않은 채 뒤집어 논란이 많았다.

또 대법원은 2015년 3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전교조는 법외노조라고 판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사법부는 "청와대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대법원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로 높이 평가할 경우 상고법원 입법추진 과정에서 법무부 반대를 무마하고 법관 약 30명 증원에 적극 협조를 유도할 수 있다"고 문건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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