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제 친구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데, 이미 12년 세월은 흘러 버렸는데…. 이걸 어떻게 물어 달라고 해야 할까요.”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부가 정부와 협상을 위해 법원 판결을 조율한 정황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문건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대법원이 협조한 사례로 KTX 해고승무원 사건이 언급됐다. 보고서가 공개된 지난 25일은 KTX 해고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서울역 앞에서 천막농성장을 차린 다음날이었다. <매일노동뉴스>가 28일 오후 서울역 농성장에서 김승하(39·사진)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을 만났다.

- 대법원이 정부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렸다는 보고서를 접하고 어땠나.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도 정치적 판결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막상 진짜 그랬다는 게 확인되니까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다. 욕도 하고 소리 지르고 울기도 하면서 요 며칠을 보냈다. 농성장에서 동료들도 ‘이런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었구나, 믿을 데가 하나도 없구나’ 자조했다. (조합원들이) 누구한테 따져야 할지 모르니 괜히 가족들한테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분노를 어떻게 표출해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 KTX 해고승무원들이 코레일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1·2심은 위장도급이고 승무원들은 실질적인 코레일 직원이 맞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3년 전 2015년 2월 대법원이 1·2심 판결을 뒤집었다.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파기환송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위장도급이 너무 명확하고 증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모든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안하무인격 판결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2심 재판부는 열차 승무업무가 원청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성질의 업무이고, 도급업체에 사업경영상·인사노무관리상 독립성이 없다고 봤다. 코레일의 위장도급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정반대로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소송에 참여했던 한 해고승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대법원에서 정치적 판단 없이 인정됐다면.

“그랬다면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명·안전업무 논란 없이 코레일이 승무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았겠나. 친구를 살려 내라고, 12년 세월을 돌려 달라고 외치고 싶다.”

- 대선후보 시절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과 승무업무 직접고용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 이행을 요구하며 무기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데.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고, 오영식 철도공사 사장이 취임한 지 4개월이 다 돼 가는데도 해고승무원들은 이렇게 다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해야 한다. 아직도 코레일과 정부가 싼 인건비로 사람을 부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대통령 의지가 담긴 말 한마디라도 있으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외면하는 것 아닌지 서운한 마음이 든다. 코레일이나 국토교통부, 청와대에서 나온 분들이랑 면담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제 사법부가 망가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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