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수원지법(안양지원) 2018.5.1. 선고 2018카합10031 결정



1. 사실

주식회사 삼안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는 조합원 범위에 관해 ‘현 회사의 직급상 이사대우 이상의 임직원(등기유무 불문)’은 조합원이 될 수 없도록 정하고(4조1항1호), 조합원이 이에 해당될 경우에는 ‘인사발령일을 기준으로 그 해당 기간에 한해 조합원의 자격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동조 2항). 조합원 구○○은 2016년 1월1일 부장 직급에서 이사대우 직급으로 승진했다. 그런데 구○○은 임원선거에 출마해 지난해 11월17일 전국건설기업노조 삼안지부 위원장에 당선됐다. 이에 사용자 삼안은 구○○이 조합원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삼안지부 위원장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며 그를 단체교섭 담당자로 한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또 노조 공문발송, 대의원대회 소집, 집행간부 임명 등 그를 대표로 한 각종 노조활동을 인정할 수 없다며 그와 관련한 노조활동 보장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안에서 정상적인 노조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지부 위원장 구○○은 대의원대회 결의를 거쳐 전국건설기업노조에 교섭권을 위임했으며 사용자를 상대로 단체교섭 응낙 및 조합활동 보장을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했다.

2. 주장

신청인(구○○, 삼안지부)측은 헌법은 근로자의 자주적인 단결권 등을 보장하고(33조), 이에 따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다며(5조), 노조 규약상 조합원 범위에 속하는 한 그 노조에 가입해 조합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협약에서 조합원 자격을 정하고 있다 해도 노조 규약상 조합원 자격이 인정되는 근로자는 노조에 가입해 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고, 조합원으로서 임원 선거에 출마해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돼 노조를 대표해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측이 구○○을 대표로 한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각종 조합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위법·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피신청인측은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자의 범위는 노조 규약으로 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노조와 사용자가 단체협약으로 조합원 범위를 정할 수도 있다"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노사관계법제팀-1054, 2007.3.28.; 노사관계법제팀-348, 2006.2.10.; 노조 01254-933. 1997.12.19.) 등을 내세워 구○○이 2016년 1월1일 이사대우로 승진한 때부터 조합원 지위를 상실한 것이라며 노조 임원선거에 출마할 자격도 없고 당선됐어도 위원장으로서 지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구○○을 대표로 한 단체교섭 등 각종 조합활동은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피신청인은 가처분재판 심문기일을 앞두고 건설기업노조와 단체교섭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신청인들의 가처분신청은 보전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신청인들은 교섭권을 위임하더라도 본래 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신청인의 교섭권한은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며 여전히 보전 필요성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3. 결정

재판부는 근로자는 노조 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당해 노조에 자유로이 가입함으로써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고, 단체협약에서 조합원 범위를 정해 조합원이 될 수 없는 자를 특별히 규정하고 있을 경우 그에 따라 조합원 자격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단체협약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이라고 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3.12.26. 선고 2001두10264 판결, 대법원 2004.1.29. 선고 2001다6800 판결 등)를 인용하고서 구○○은 조합원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구○○은 삼안지부 위원장 자격이 인정되고, 삼안지부 대표로서 사용자 삼안과 교섭할 권한을 가지며 삼안은 삼안지부와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건설기업노조에 교섭권을 위임해 그 단체교섭에 사용자 삼안이 응하고 있다 해도 그 교섭권 위임의 적법성 여부 등과 관련해 구○○의 삼안지부 위원장 자격의 존부가 문제되고 삼안지부의 단체교섭 권한은 수임자 건설기업노조의 단체교섭 권한과 중복해 경합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며 건설기업노조와의 단체교섭 결렬시 삼안지부와 직접 단체교섭을 해야 할 수 있으므로 단체교섭응낙 가처분을 명할 보전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삼안지부 위원장으로서 구○○의 조합활동을 보장하라는 가처분신청은 포괄적인 내용이라서 가처분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구○○도 삼안지부 대표자이자 조합원으로서 정당한 조합활동을 할 권리가 있고 권리 실현을 위해 사용자 삼안을 상대로 조합활동 방해 금지를 구할 피보전권리가 인정된다고 봤다. 삼안지부가 삼안에 구○○을 근로시간면제 대상자로 통보하자 그 수용을 거부하고 회사 인사관리규정 등에 따라 조치할 것임을 통보하는 등의 행태로 볼 때 예비적으로 조합활동 방해금지 신청에 관한 보전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4. 평가

어찌 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넘어서는 결정은 결코 아니다. 새삼 판례리뷰를 해야 하는가 하고 법리적인 신선도가 없는 결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법원이 가처분결정으로 한 선언은 결코 새삼스럽지 않다. 사용자가 단체협약을 내세워 노조가입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고 법원이 결정문을 통해 선고한 것이니 말이다. 오늘 이 나라에서 수많은 사업장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너무도 태연하게 조합원 범위 내지 자격을 정하고 있는 조건에서는 법리적으로는 당연한 결정이라도 우리는 그 의미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가처분결정은 노조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단체협약을, 그 단체협약에 따른 사용자의 행위를 노조 조직 활동에 대한 지배·개입, 그에 따라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불이익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하지도 않았고, 자유로운 노조가입을 보장한 노조법 5조 및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노조법 81조를 위반한 것이라며 그 단체협약이 위법·무효라고 판단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 노조할 자유로 보자면 많이 부족한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은 이 나라에서 수많은 사업장의 단체협약이 욕된 것임을 보여 준 결정인 것이고, 그런 단체협약에 구속돼 노조할 자유가 제한되는 데 동조해 온 우리 노조의 행태가 욕되다고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노조할 자유 등 노동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는 노동부의 행태는 이번 사건에서도 자신의 행정해석을 통해 보여 줬다.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부는 이렇게 노조할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단체협약에 대해 시정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번 결정에서는 조합활동 보장에 관한 가처분신청에 있어서는 조합활동을 보장하라는 주위적 청구는 포괄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조합활동 방해금지에 관한 예비적 청구만 인정했다는 점에서 아쉽다. 삼안에서 사용자는 구○○이 조합원 자격 및 위원장 지위가 없다며 그를 대표로 하는 조합활동 일체를 인정치 않는다고 천명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단순히 조합활동 몇몇 부분을 문제 삼는 것과는 달리, 구○○이 대표로 하는 조합활동을 포괄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는 적극적으로 조합활동을 보장하라는 가처분신청이 가처분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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