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려 ‘사탕·청양고추·생강’을 씹으며 운전하는 시내버스 운전노동자들을 만난다. 그들은 첫차를 몰러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선다. 나섰던 현관문으로 다시 들어오는 시간은 밤 12시는 돼야 했다. 가뜩이나 심각한 교통체증, 촉박한 배차시간, 사고 위험으로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긴장한 채로 하루 14시간을 운전했다.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시민 안전을 책임지기는커녕 자신의 몸도 챙기기 힘들다. 언제인가부터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목을 가누기 힘들어졌다.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업무관련성 평가를 위해 만난 버스노동자들의 골병 이야기는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닌 밤조차 없는 일상을 듣는 것으로 출발해야 했다. 사실 운전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업무관련성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해 자세나 반복작업을 중심으로 업무관련성 평가를 내리는 관행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직업적 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엄격한 운행시간을 준수하도록 하는 외국 논문이나 문헌에서는 좌식 작업, 전신진동 부담 정도를 평가하고 있을 뿐이다.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한번 운전석에 앉으면 꼼짝없이 두세 시간을 과속방지턱을 넘나들며 운전해야 하고 그런 일을 하루 14시간 하는 이런 초현실적 상황을 기준으로 논문을 쓰지 않는다. 그런 외국 논문들을 우리나라 버스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2017년 경기도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경기도 시내버스 운전자들은 격일제로 근무하면서 월 16.4일, 하루 평균 16.5시간을 일하면서 월평균 293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주말과 야간운전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노동관행을 낱낱이 들여다봐야 노동자들이 골병든 원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올해 2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법정노동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에서 논의된 지 5년 만이었다. 업무관련성 평가를 위해 만난 버스회사 관리자는 무제한 근로가 가능한 ‘특례업종’에서 다른 운수업은 그대로 유지되고 ‘노선버스’만 제외된 것이 불만이었다. 업계 현실을 무시한다고도 했고, 회사에서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도 노동자들이 싫어한다고도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임금이 줄어드는 탓이라고 했다. 하지만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한 노동자는 급여는 조금 줄었지만 오히려 살 만하다고 했다. 어쩌면 경제적으로는 부족해질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의 건강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근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노동시간단축을 마치 시대적 사명처럼 이야기했던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계질환 인정기준도 전향적으로 확대하지 않았던가. 비록 부족하고 미흡해 보이지만 제대로 가는 길이라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 국회가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특례 조항을 두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근기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5년이 걸렸지만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30분 만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노동자들의 반발에도 국회의원들의 압도적(?) 찬성의견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삼모사도 이런 것이 없다. 노동자들은 시간당 임금이 낮아서 법대로만 일하면 생활이 안 되니 생명과 건강을 걸고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는데, 노동시간단축이 시대적 사명이라는 정부와 여당은 기껏 인상했던 최저임금을 되돌려 버리는 법안을 주도해 통과시키는 기이한 일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으로 골병들고 과로로 쓰러져 드러눕는 컴컴한 밤이 아니라 여가가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줘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진정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돌아볼 일이다.

줘야 할 것을 안 주는 것은 나쁜 일이다. 줬다 뺏는 것은 나쁘고 치사한 일이다. 줬다가 빼앗아도 될 만한 것은 국민 권한을 위임받고도 이런 일들을 벌이는 위정자들의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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