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법원이 3년 이상 과로에 시달리다 사망하기 직전 3개월간 수주물량 감소로 노동시간이 갑자기 줄어든 노동자의 뇌출혈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다. 사망(발병) 직전 3개월간 평균 노동시간만 따져 과로사 여부를 판단하는 고용노동부의 '뇌혈관질병 또는 심장질병 및 근골격계질병의 업무상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만성과로 인정기준)을 무색하게 만드는 판결이다.

13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지난달 18일 금형 제작 노동자 ㄱ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포기해 이 판결은 지난 12일 최종 확정됐다. 법원은 “ㄱ씨의 노동시간이 사망 3개월 전부터 감소해 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만성과로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3년간 초과노동이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사망 직전 노동시간 감소는 수주물량 감소로 말미암아 업무상 스트레스가 더욱 가중됐을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014년 10월 협심증을 앓던 ㄱ씨는 2015년 1월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사망 전 석 달간 1주에 평균 48시간을 일했다. 사망 직전 한 달간은 주 40시간에도 못 미치는 38.9시간을 근무했다. 수주물량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수주물량이 줄기 전에는 노동시간은 살인적이었다. 실제로 그의 근무시간표를 보면 2012년께부터 2014년 11월까지 만성적인 초과노동을 했다. 한 달 노동시간이 346시간을 넘을 때도 있었다. 2012년에는 휴일도 없이 34일을 연속으로 일했다. 2013년에는 무려 312일을, 2014년에는 304일을 근무했다. 쉬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과로를 한 것이다.

서울고법은 "사망 당시 업무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고 노동시간이 줄었더라도 고인이 2년7개월간 만성적으로 강도 높은 초과노동과 휴일 없는 연속노동을 지속한 점을 비춰 볼 때 그동안 누적된 피로가 단기간에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오랜 기간 과로가 고인의 기존 질환인 고혈압과 협심증 발병에 중요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망 직전 노동시간이 감소한 것은 수주물량 감소로 인한 것으로, 생산부서 책임자인 고인의 업무상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이번 사건은 2년7개월간 장기간 만성과로가 뇌심혈관계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 이례적 판결"이라며 "노동부의 고시도 만성적 과로 판단기준을 3개월 단위 정량적 평가에 매몰될 게 아니라 불규칙한 형태의 누적된 과로도 고려할 수 있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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