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당·정·청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상한제 시행을 불과 11일 남겨 두고 근로기준법 위반 사용자를 6개월간 처벌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근기법이 노동시간단축 연착륙을 위해 단계적으로 시행되는데 처벌까지 유예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정부와 국회가 맞부딪치는 가운데 법정노동시간 위반에 대한 처벌까지 미루자 "사용자 편들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노동부 “위법 적발해도 최대 6개월 시정기간”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청와대는 20일 오전 국회에서 고위당정청회의를 열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노동시간단축과 관련해 '6개월간 계도기간'과 '처벌 유예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다음달 1일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의 1주일 최대 노동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노동시간단축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제도 연착륙을 위해 당분간 처벌보다는 계도 중심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7~12월에는 법 위반사항을 적발해도 처벌하지 않을 방침이다. 근로감독이나 진정사건 처리 과정에서 위반사실을 확인하면 3개월 동안 시정기간을 부여하고, 필요하면 3개월을 추가한다. 최장 6개월간 사법처리를 미루고 교대제 개편·인력충원 같은 장시간 노동 원인 해소조치를 하도록 유도한다는 얘기다.

김왕 근로기준정책관은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노사가 합의해야 할 것은 없는지, 합의 이행을 위해 노력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라며 “7월1일부터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는 노선버스(주 68시간) 등 극히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는 6개월이나 시정기간을 줘야 할 사업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 특례에서 제외된 21개 업종 중 30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7월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시간단축이 적용된다. 노동부는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동시간 준수를 위한 사용자 조치 내용을 감안해 처리할 예정이다.

올해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올해 7월1일부터, 50~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노동시간단축이 시행된다.

“사용자 편법 준비시간 벌어 주나”

관공서 공휴일을 유급휴일로 의무화하는 규정의 경우 300인 이상은 2020년 1월1일부터, 30~300인 미만은 2021년 1월1일부터, 5~30인 미만은 2022년 1월1일부터 적용된다.

모두 제도 연착륙과 노동시간단축 충격을 줄이는 방안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사용자 처벌까지 6개월 유예하는 방안을 꺼낸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근기법에 없는 처벌유예를 당정청 협의만으로 시행하겠다는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1주일은 7일이라는 정도의 의미를 확인하는 법 조항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데 무슨 처벌을 또 유예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된다면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지 언제까지 유예만 할 것이냐”고 비판했다.

사용자들이 노동시간단축을 피하는 꼼수를 생각할 시간만 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이미 현장에서는 법 시행을 앞두고 탄력근로·유연근로·재량근로 같은 편법과 술수가 난무하고 신규인력 충원은 외면하고 있다”며 “6개월 처벌면제 기간은 최악의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밀어붙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총 요청 하루 만에 당정청 결정

이날 당정청 결정은 한국경총이 지난 19일 노동부에 “근로시간단축 시행 계도기간을 달라”고 요청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사용자 편들기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당정청은 최저임금법 개정과 관련해 “취지와 내용·영향을 국민께 정확히 알리고 임금인상 효과가 감소할 수 있는 저소득 노동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은 “최저임금법 개악에 이어 정부와 여당이 다시 사용자 편들기에 나섰다”며 “6·13 지자체 선거 결과에 취해 오만과 반노동 정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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