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오류동에 있는 세일○○과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입주한 성진△△△는 자동차 카시트 커버 제작업체다. 제품을 현대·기아자동차에 납품한다. 두 회사 노동자들은 커버를 재단·봉제하는 일을 한다.

세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연 600%의 상여금을 받는다. 성진△△△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한 달 1만원에서 10만원 사이의 차등성과급만 받는다. 연봉으로 치면 세일○○이 성진△△△보다 최대 900만원 더 받는다. 노동조건은 소속 회사가 다단계 하도급 먹이사슬에서 어느 단계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갈린다. 민주노총이 26일 오전 서울 정동 대회의실에서 ‘재벌개혁과 노동운동의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현장 노동자들이 겪는 재벌갑질 유형을 소개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먹이사슬 위치 노동조건 갈라"=서다윗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장은 "제조기업들이 생산체계를 다단계로 계열화해 노동자 사이를 가르고,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일○○은 현대·기아차 2차 벤더다. 성진△△△는 현대기아차 4차 협력사다. 서다윗 지회장은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면 완성차 노동자의 노동과 카시트 커버를 만드는 노동자의 노동 모두가 필요한데도 재벌사들이 필수노동에 대해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었다”며 “다단계 임금구조를 통한 차별을 통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이익을 편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구조는 원청, 나아가 재벌 총수에게 이윤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서 지회장은 “노동자들을 다단계 임금구조로 묶어 분열시키는 와중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해 월급을 제외하고 900억원의 배당금을 챙겼다”며 “정몽구 회장이 성진△△△ 노동자들보다 얼마나 대단한 노동을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유통부문에서는 단기계약직의 무분별한 양산이 재벌갑질 유형으로 꼽혔다. 서비스연맹 마트노조는 신세계 이마트가 2016년 말 도입한 ‘스태프’를 지목했다. 스태프는 이마트가 점포 운영을 위해 1·3·6개월과 1년을 단위로 고용한 비정규직을 뜻한다. 2년간 스태프 사원은 3천여명으로 증가했다.

전수찬 마트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선언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말은 나쁜 일자리인 스태프를 양산하면서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이마트는 인력충원 없는 소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피해 가는 꼼수마저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통업계 비정규직 양산, 건설·통신업계도 하청구조에 신음"=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건설현장과 통신 분야를 어지럽히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의 99.4%가 하도급 분업을 한다. 법에 따라 하도급은 2단계까지만 허용된다. 3단계 이상은 불법하도급인데, 70%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영록 플랜트건설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재하도급을 금지시킨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다수 현장에서 전문건설업체들이 무면허 팀장(오야지) 또는 실행소장(이사)에게 재하도급을 주고 있다”며 “현장의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이 하루 일당에서 2만~3만원의 임금을 착취당하는 피해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에 "자회사 수준의 복지 보장"을 제시했다. 지부의 직접고용 요구에 4년간 침묵한 뒤 밝힌 내용이다. 지부 투표에서 "개선안 협상"에 찬성한 조합원은 3.92%에 그쳤다. 반면 "직접고용 투쟁 전면화"를 택한 조합원은 무려 94.79%였다.

박장준 노조 정책국장은 “절대 다수의 조합원이 고용형태가 변하지 않고서는 갑질과 착취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민주노조의 경험과 상식에 근거해 ‘돈 대신 권리’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힘없는 하도급업체 노조가 아무리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하더라도 그 힘이 대기업으로 온전히 전달되기 힘든 만큼 산별조직력과 산별교섭력 강화는 재벌개혁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노동진영의 과제”라며 “노동계가 거래관계가 종속된 대기업 하도급업체들을 상대로 피해상담신고센터 역할을 하고, 노동이사제의 과도기 단계로서 노동자 추천 사외이사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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