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보건의료 노동자 대행진 집회를 마치고 광 화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하루 병원에 있는 시간이 10시간을 훌쩍 넘길 때가 많아요. 근무 후 교육이라도 있으면 12시간 넘게 병원에 있어요. 꿈에서도 저는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걸까요?"(전북대병원 5년차 간호사 임미정씨)

"저는 병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입니다. 쉬는 시간도 없이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지만 임금은 절반밖에 못 받아요. 낮에 병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 편의점 알바, 식당 알바를 하는 동료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국회에서 최저임금 삭감법이 통과돼 1만원의 꿈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조대성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비정규지부장)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가 공짜노동·태움·눈속임 의료기관 인증평가제도·비정규직 없는 병원을 만드는 '4OUT' 캠페인을 한다. 노조는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3천명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보건의료노동자 대행진'을 열고 환자존중 병원·노동존중 일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레드카드 손에 든 '백의'의 물결

이날 대행진에 참석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드레스 코드'는 흰 티셔츠였다. '백의의 천사'라는 말에서 보듯 흰 옷은 간호사를 상징한다. 이들의 손에는 '퇴장'을 뜻하는 레드카드가 들려 있다. 공짜노동·태움·눈속임 의료기관 인증평가제도·비정규직을 아웃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사회를 맡은 한미정 노조 사무처장은 “혹시 붉은 머리띠를 준비해 왔어도 매지 마라”며 “기존 집회 방식도 잊어버리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3개월간 자발적 야근으로 만들었다’는 부산대병원 율동패 그린나래의 댄스공연이 펼쳐졌다. '섹시한 의상'이 아닌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간호사들이 병원노동자의 애환을 담은 노래를 불러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노조 관계자는 “매년 이 시기에 산별교섭 시작과 함께 투쟁선포대회를 열었는데 올해는 조합원과 시민에게 친근한 방식으로 집회 콘셉트를 잡고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노조 지도부가 연설하고 조합원은 박수만 치다가 가는 집회문화를 바꿔 보려는 시도다.

“비정상적인 병원, 더 이상 용납하지 말자”

그렇다고 이날 행사가 마냥 가벼운 분위기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노조는 현재 병원이 '응급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병원에 더 이상 비정상적인 상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라며 “그동안 우리가 너무 많이 참고 견딘 결과 환자를 돌보겠다고 입사한 신규간호사 가운데 1년이 되기 전에 그만두는 비율이 38%나 된다”고 말했다. 나 위원장은 “이게 병원이냐”며 “더 이상 비정상적인 병원을 용납하지 말고 올해를 환자가 안전한 병원, 노동자가 존중받는 일터를 만드는 원년으로 삼자”고 호소했다.

노조는 '보건의료 노동자 투쟁 선언문'에서 "의료 공공성을 높이고 공공의료를 확충하기 위한 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고 속도도 더디다"며 "촛불혁명은 국민건강과 생명을 위한 의료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행사를 마치고 서울역광장에서 숭례문과 서울광장을 거쳐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행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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